<제 643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22
세상에… 인주가 피보다도 붉을 줄이야. 재산위탁관리 서류에는 아들의 붉은 인감도장이 핏자국처럼 꽝! 찍혀 있었는데….
그걸 물끄러미 내려보고 있던 신희영은 급기야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즐겨 마시던 커피나 홍삼차가 씁쓸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평소 꿀처럼 달았던 코냑마저도 씁쓸하게 여겨지더라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오래 못살 것 같아요.”
“신 여사! 힘을 내야지요. 여태까지 투쟁해온 게 억울하지도 않소?”
투쟁? 남이 들으면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줄 알겠지만 강준호는 그 말 이외의 적당한 단어를 찾을 재간이 없었다. 이미 갈라선 부부간의 재산 다툼이지만… 하긴 목숨을 건 투쟁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남편이 속썩이는 것만 해도 지레 죽을 판인데 딸년은 딸년대로, 아들놈은 아들놈대로 속을 긁으니 어찌 살 수 있냐고요.”
“신 여사가 힘을 잃으면 나는 어쩌라고요? 나야말로 남은 인생을 신 여사에게 몽땅 걸었단 말입니다.”
“내가 로또예요? 인생을 걸게?”
“로또보다도 더 대단한 사람이지요. 신 여사야말로 장차 유민제련그룹을 이끌어가야만 할 사람이라니까? 이제 다 왔어요. 고지가 바로 저기야!”
부스럭부스럭… 강준호는 주머니를 뒤져 또 다른 서류 한 장을 테이블 위로 내밀었다. 유민 회장과의 마지막 이혼판결일자를 알리는 통지서였다.
“이것 보세요. 이제 딱 일주일 남았어요. 일주일 후에 이혼 판결이 나면 유민 회장의 주식 절반이 당신께 굴러온다고요. 거기에 호성이의 주식 10%가 플러스되면… 누가 뭐래도 당신이 유민그룹을 지배하게 되는 겁니다. 힘내요, 힘!”
“애기 낳는 것도 아닌데 날마다 어떻게 힘을 냅니까? 그리고 호성이 녀석이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날뛰는데 그 녀석 주식을 확실하게 빼앗아올 재간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호성이가 도장 찍어준 재산위탁관리증서를 확실히 보관하시라고요.”
“이게 무슨 소용 있어요? 그 녀석이 죽은 뒤에나 효력을 발휘하게 될 서류쪼가리인걸. 나에겐 지금 당장 내 손을 들어줄 백기사가 필요하다고요.”
“그래도… 그 증서가 보물단지예요.”
강준호는 이렇게 그녀를 위로했다. 하지만 신희영의 낯빛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뱉을 따름이었다.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내가 얼빠진 년이지.”
“왜요? 또 무슨 사고를 쳤습니까?”
“큰 사고를 쳤어요. 작년여름에… 강유리 선수를 확실하게 꼬이려고 내 주식을 조금 떼어줬단 말이지요. 그래서 장차 이혼한 후에 남편의 주식 절반을 차지해도 경영권을 확보하기엔 주식이 모자란단 말이어요.”
“그… 그런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러게요, 내가 너무 헤펐다니까?”
신희영은 고개를 푹 떨어뜨렸고 강준호는 그 앞에서 입을 떡 벌리고야 말았다. 실로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녀야말로 천길 나락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겠지만… 사실 강준호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환호성이라도 지를 뻔했다. 지화자! 땡이로구나. 내 딸 유리가 어느새 유민그룹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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