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4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1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동작 개시!”

한참 후에야 요정 방안으로 들어온 유호성도 흥선 대원군 놀이를 걸러 갈 수는 없었다. 재벌2세가 어차피 그들을 요정으로 끌어들인 이상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이상한 공식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그 자세에서 뒤로 돌아 누우세요.”

“아, 이렇게요?”

“그렇지, 그렇지!”

어느새 방 안에는 세 명의 아가씨가 갑사치마를 입은 채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었다. 그런가하면 세 명의 사내들은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마치 군인들이 철조망을 통과하듯 벌벌 기고 있었다.

“자! 풍악을 울려라.”

드디어 재벌2세가 큰 소리로 명령했다. 그와 동시에 우당탕탕 여러 명의 여인들이 방 안으로 뛰어드는가 싶더니 가야금소리, 대금소리, 장구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쇳소리처럼 거칠면서도 혹은 간드러지는 마담의 목소리가 어느덧 가락을 맞추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낙양성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 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 터인데.”

“어허! 좋다.”

아,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권도일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화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두 손가락을 입에 물고 억지로라도 참아야만 했다.

‘그래, 동네 불량배들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한신 장군을 기억하자. 기생들 치마폭 아래를 기었다는 흥선 대원군을 떠올리자.’

그는 갑사 치마폭 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다. 어째서냐고? 대대로 이어져 온 가문의 복수를 수행하기 위해서란 말이다.

“잠깐, 동작 그만!”

재벌2세가 또다시 명령했다. 그와 동시에 가야금을 타던 아가씨도, 대금을 불던 아가씨도, 장구를 치던 아가씨도, 타령을 읊던 마담도 모두 동작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권 전무! 그리고 유호성 선수!”

재벌2세가 아가씨 치마폭에 얼굴을 묻은 채 그들을 불렀다. 안제 그랬는가 싶게 그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째서 내가 이런 짓을 하는 줄 아십니까?”

“……”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치마 속을 보세요. 뭐가 보입니까?”

“……”

“어째서 아무런 대답이 없어요? 권 전무님! 그리고 유호성 씨!”

권도일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아가씨의 붉은 팬티와 검은 망사스타킹 뿐이었다. 이걸 어찌 대답해야 할까. 눈에 보이는 그대로 대답해야 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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