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7회> 모든 길은 하나로! 36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아는 법이에요. 더구나 연적의 마음은 더욱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지요. 난 사모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사모님이야말로 나의 고질적인 연적이니까요.”

“연적은 무슨… 할망구일 뿐이지.”

유민 회장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차라리 강유리를 연적으로 알고 있다면 그도 긴장할 만했다. 그런데 웬걸, 신희영… 그 할망구를 연적으로 치부하다니. 강유리에게 마음 준 사실을 들키지 않은 게 어쩌면 천만다행이었다.

“마음으론 어떤지 몰라도 법적으론 분명한 연적이지요.”

“법적인 연적? 꽤나 어렵군. 어쨌거나… 법적인 연적을 어떻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벼랑에서 뛰어내리게 한다는 거요?”

“그야 사모님이 아직 나와 회장님과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이를테면 충격요법.”

“충격요법? 오라, 이제야 알겠네. 레전드골프장 19번 홀… 그곳에 도착해서 마누라가 티업을 하려는 순간에 극적인 고백을 하라는 것이로군. 그런데 어떻게 해야 마누라가 벼랑에서 뛰어내릴 만큼 극적이 되지?”

레전드 골프코스 19번 홀, 파3홀로서 티잉그라운드는 절벽 위에, 그린은 절벽 아래에 놓여있으면서 그 고도의 차이가 무려 430m에 달하는 곳. 티잉그라운드에 서서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뒤집어진 하트 모양의 그린이 앙증맞게 드러나는 곳.

그 아찔함에 티샷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지만, 간혹 호기심에 들뜬 사람은 벼랑 끝까지 살살 걸어가서 기필코 턱 아래에 놓인 허공의 깊이를 가늠하고야 마는 그런 곳.

“사모님이 티샷 준비를 할 때에 회장님이 고백을 하시는 거예요.”

“그 정도야 눈치 챘지. 하지만 고백하는 정도로는 놀라긴 할지언정 절대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지는 않을 걸?”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때 내가 430m 아래의 그린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거예요. 물론 반쯤 벗은 상태로 말이지요.”

“아하!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대충…”

“그렇지요? 이심전심으로… 어떻게 해야 사모님이 뛰어내릴지… 그림이 그려지지요?”

유민 회장은 현성애의 아이디어에 진심으로 혀를 찼다. 참으로 대단한 기획이었다.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신희영을 430m 벼랑 위에서 뛰어내리도록 하는 방법이라니!헬리콥터를 타고 가는 레전드 골프코스 19번 홀은 관망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망원경을 여러 개 놓아 두게 마련이었다. 헬기에서 내리면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드라이버보다 망원경에 손이 먼저 가곤 했다. 동시에 단체관람객이 되는 거였다.

문제는… 망원경 속의 경치에 취하다 보면 가까운 곳의 거리감을 잃게 된다는 것. 이를테면 등잔 밑을 볼 수 없다는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점. 현성애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하자는 말이었다. 신희영이 쌍안경을 들여다보는 순간 대충 벗은 현성애가 그린 위에 나타난다. 그와 동시에 유민 회장이 놀라는 척 하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작전 끝!

“아니, 저건 성애… 현성애?”

무의식적으로 이 정도만 읊어도 둘 사이의 관계를 즉각 알아챈 신희영은 ‘저년을…’하고 중얼대며 앞으로 두어 발을 내딛게 될 터, 그와 동시에 골프장 측에서는 그린 위의 여자를 쫓아내기 위해 헬기를 띄울 것이 뻔한데…

허공에 발을 내딛는 동시에 헬기의 프로펠러 바람이 뒤에서 거세게 불어오니 결과는 뻔한 것. 떨어지는 데에만 20초 걸린다고 하니… 20초만 참으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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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