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 붉은 길, 푸르른 마음 (5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우환은 3형제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우환이 닥치게 되면 또 다른 우환에 연속해서 맞닥뜨릴 확률이 높다. 40도의 고열에 시달리는 염병을 앓는 사람이 땀구멍이 막히는 땀 병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병까지 아울러 앓게 되는 격인데… 신희영의 처지가 꼭 그랬다.
“아니, 가뜩이나 속이 뒤집어지는데 너까지 왜 이러는 거야?”
신희영은 히스테리를 참아내지 못하고 유한솜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비행기 창문을 열 수만 있으면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 이상 묻지 말고…”
현금 3천만 원을 달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신희영으로서도 기가 막혔다. 누가? 여태껏 잠잠히 따라다니던 유한솜이 말이다.
“아니, 네 까짓 게 3천만 원을 무엇에 쓰려고? 그것도 당장에 필요하다고 보채다니… 말이나 되니?”
당장 내줄 돈도 없었지만 하필이면 지금 당장 현금으로 달라는 것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나 신희영이 어떤 생각을 하든지 유한솜은 당장 현금 3천만 원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 그 정도만 알고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쇼 하지 마, 없어. 3천만 원이 갑자기 어디서 나냐고?”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카드로 인출하면 되잖아요? 먹고 노는 데에는 여태까지 물 쓰듯 펑펑 잘만 쓰다가 사람 하나 살리겠다는데 왜 그렇게 인색하게 굴어요?”
유한솜은 눈물을 그렁이며 신희영에게 대들었다. 그녀는 좀 전에 비즈니스 석 한쪽 구석에서 열렸던 이른바 5자회담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엄마 신희영의 수중에 자금이 바닥났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 패리스 힐튼 처럼 철없는 재벌 상속녀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카드사용이 정지 됐어, 이 애물단지야.”
“그럼 은행에 가서 인출하면 되지.”
“꼭 큰소리를 쳐야 알아듣겠니? 네 아버지가 돈줄을 막아놨다고.”
“그럼… 아버지 때문에 3천만 원을 내게 줄 수 없다는 거야?”
“넌 도대체 뭐 때문에 돈이 필요한데?”
이야기가 쳇바퀴처럼 빙빙 돌기만 할 뿐이었다. 사실 유한솜은 한 통의 문자메시지 때문에 갑자기 돈이 필요해졌다. 따지고 보면 아들의 북한 입국을 문자로 알려온 권일주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지, 더 세밀히 따져보면… 저 혼자 잘난 척하고 북한으로 입국한 권도일 때문이라고 해야 옳았다.
신희영이 파파라치와 문자메시지로 씨름을 하는 동안 유한솜은 나름대로 충격적인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권도일의 아버지 권일주였다. 그는 원수 집안의 외동딸이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것을 무한정 즐길 따름이었다. 왜냐고? 사랑하면 장님이 되는 법, 원수의 딸이 장님이 된 채 제 아들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있으니 오죽 통쾌할까! 차제에 임도 보고 뽕도 딸 요량이었다.
‘한솜 양, 도일이가 북한으로 입국했다는 군. 그 애가 걱정돼요. 중국 고위층에 아들의 안전을 부탁해야겠어. 그러자니 3천만 원이 당장 필요하다는 군. 부자 어머니께 넌지시 부탁해 봐요. 도일이의 안전을 위해서…’
권일주는 밑져야 본전이라 여기며 이런 내용의 문자를 유한솜에게 날렸는데… 유한솜은 3천만 원을 확보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 작정이었다. 하필이면 우환이 겹치고 돈이 바닥나 쩔쩔매는 신희영의 처지는 알 바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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