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9회> 붉은 길, 푸르른 마음 57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보노라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우리나라와 스코틀랜드의 중간지점에 놓여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신희영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오히려 적도를 가로질러 날아가야 하므로 영국보다 훨씬 비행거리가 길지도 모른다.

“우리 호성이의 코치가 될 유리코턴 선수는 남아공 케스케이드 호텔에 잘 도착했나? 스코틀랜드에서는 언제 떠났대요?”

“스코틀랜드 카누스티 골프장에서는 벌써 열흘 전에 철수했답니다. 그리고 이미 사흘 전에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요….”

“그런데, 또 무슨 일이 생겼어요? 어째서 말꼬리를 흐리고 그래요?”

“희망봉이라고 하나요? 남아공의 땅끝 마을… 거기나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케이프타운으로 갔답니다.”

“뭐야? 그 인간… 계약과 다르잖아요? 어째서 만나기 전부터 심통을 부리는 거야? 잘 좀 챙겨 봐요.”

“월 7000달러에 숙박비, 식비를 선불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숙박비 지급이 늦어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급이 늦어진 날만큼….”

“늦어진 만큼 희망봉에 가서 놀다 오겠답디까? 그거 참… 사포보다 더 까칠한 사람이네. 숙박비는 어째서 늦게 지불했어요?”

“그건… 저….”

“은단 먹은 병아리처럼 어째서 대답은 하지 않고 헛구역질만 하는 거야?”

“그게 그러니까….”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공 과장의 목소리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어찌 여왕폐하 면전에서 생활비가 떨어졌다는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는 왕회장의 히스테리 섞인 날카로운 목소리를 막아내기 위해 한 손으로 수화기를 틀어막고 있었다.

“공 과장, 당장 이리 뛰어 와요. 천 부장도 오라고 해!”

비행기의 이코노미 석에서 비즈니스 석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고작해야 50~60미터 이내의 거리였지만 신희영은 당당히 핸드폰을 통해 공 과장을 다그치던 중이었다. 로밍전화였으므로 이를테면 그녀의 목소리는 인도양 상공을 나는 비행기의 비즈니스 석으로부터 퍼져나가 태평양 상공에 떠 있는 인공위성을 거쳤다가, 다시 여러 군데의 기지국을 통해 같은 비행기의 이코노미 석으로 되돌아온 셈이었다.

문제는 역시 비싼 통화료! 몇 걸음 걸어 나가 공 과장에게 직접 물어보면 공짜로 해결될 것을… 회장으로서의 품위 때문에 비싼 로밍 통화료를 물 쓰듯 날린 셈이었다. 당장 쓸 생활비도 없는 주제에….

“그러니까… 에, 그러니까… 자금이 바닥났다는 말씀을….”

“뭐라고요? 그럼 당장 회사에 연락해서 입금시키라고 했어야지 여태까지 가만히 있으면 어떡하냐고요?”

“그게… 그러니까… 법원으로부터 가처분신청인가 뭔가 하는 게 받아들여져서 회사 돈에 손을 댈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대?”

“그게… 그러니까… 닷새쯤 되었는데요….”

비즈니스 석 옆에 기립한 채로 서 있는 천 부장과 공 과장은 재봉틀처럼 덜덜 떨고만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건 또 무슨 변고인지. 하필이면 그 순간에 1등석 화장실 앞에서 죽치던 파파라치로부터… 예의 그 동영상이 신희영의 전화기로 날아들었던 것이다.

알리바바 더보기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