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길, 푸르른 마음 47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동요 ‘따오기’였던가? 빤질빤질하게 생겨먹은 파파라치는 방금 찍은 동영상 화면을 되돌려보면서 하필이면 해맑은 동요를 흥얼대고 있었다. 하긴…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지 알아서 기라는 소리였다.
“아저씨, 신고하기 전에 그 사진기 이리 주세요.”
“어째서 남의 사진기를 달라고 합니까? 이건 내 재산목록 1호거든요?”
“그럼 신고할까요?”
“내가 강제로 사진기를 들이댄 것도 아니고… 저절로 화장실 문이 열리고, 저절로 찍혔을 뿐인데, 어째서 신고를 당해야 합니까?”
“아저씨가 파파라치인 줄 다 알거든요?”
“알면 됐네요. 이 자리에서 ‘쇼부’ 치면 되지 뭐.”
“쇼부?”
“아하, 우리 전문용어를 써서 미안! 흥정을 하자는 얘깁니다, 강유리 씨.”
파파라치는 유들유들하기 짝이 없었다. 하긴 급하고 당황한 쪽은 그녀였을 뿐, 파파라치가 당황할 까닭은 전혀 없었다.
“이분은 누구실까? 옷을 홀랑 벗고 예쁘게도 앉아계시네. 저런! 강유리 선수가 황급히 나오는 모습이 선명하게 찍혔네요. 이걸 어쩌지요?”
“아저씨! 정말 이러실 거예요?”
“그럼 당장에 신문사로 전송부터 할까요? 요즘 세상 참 좋아졌어요. 수천 미터 하늘 위에서도 즉시 사진 전송이 가능하거든요.”
미칠 노릇이었다. 상대는 말로 해결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완력을 행사할 수도 없었으니… 오, 지저스! 혹은 나무 관세음보살!
“아저씨! 지금 내겐 돈이 한푼도 없다고요.”
“그럼 흥정은 끝난 걸로 합시다. 동영상 사진에 찍힌 걸로 봐서는… 저 안에 옷 벗고 계신 분이 제련그룹의 젊은 재벌이신 것 같은데… 아닌가?”
“아저씨!”
“왜 불러요? 신문사 말고 방송국으로 보내라고… 충고하시려고요?”
“제발 살려주세요. 저 뒤쪽 이코노미석에 내 매니저가 타고 있거든요? 가서 의논하고 올게요. 그러니 제발… 전송은 보류해주세요.”
그녀는 눈물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좀 전에만 해도 그녀는 고조된 사랑의 열기에 휩싸여 있지 않았던가. 썩어도 준치라고, 세가 기울긴 했어도 한때 쩌르르! 하던 제련그룹의 젊은 2세와 불장난을 벌이던 중이었는데….
“오! 그래요? 하긴 사업 얘기는 매니저와 해야 어울리지.”
“아저씨 자리가 어디예요? 30분 후에 그리로 찾아갈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정확히 30분 후에 다시 이 앞에서 만나지요, 뭐. 이코노미석 화장실은 새벽에도 만원이라… 어차피 여길 애용하는 편이 좋거든요.”
그는 엿장수가 맛보기를 떼어주듯 카메라를 그녀의 코앞에 들이밀어 잠깐 동안 동영상 화면을 보여주었다. 변기에 낀 채 홀랑 벗은 유호성과 그녀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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