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5회> 붉은 길, 푸르른 마음 43
“단둥으로 해서 신의주로 들어갑니까?”
“글쎄요…회령 세관을 통과해서 가는 것이 아닐지….”
“세관을 통과할 리는 없잖습니까?”
“그도 그렇소만.”
아하! 여기까지… 권도일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대선주자나 높은 양반을 통해 시시콜콜 전해들은 바 없었으므로 그는 모든 사실이 궁금했다. 하지만 어디까지 물어봐야 하고 어디서부터 입을 다물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본능이라고나 할까? 홀로 깨닫고, 홀로 비밀을 간직해야 하는 외로운 임무의 수행자라고나 할까?
“까짓, 아무 곳으로나 가면 어떻습니까? 북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북으로 들어갈 때는 어디를 통과하느냐가 매우 중요하오. 나도 선생이 어느 길을 통해 들어갈지 잘 모른다는 뜻이오. 나는 다만 조선에서 경주 차들이 지나가는 길을 새로 닦으려 한다는 것밖에는 모르오.”
“그럼 누가 알고 있을까요? 내가 통과할 길을.”
“일단 단둥으로 가서 중국 상무부장을 만나게 되어 있소. 상무부장은 어젯밤 비행기로 베이징을 출발했습네다. 그러니 이미 도착해 있겠지요. 통상교섭본부장도 함께 와 있다고 들었습네다.”
“FTA협상을 도맡아 하는 그 상무부장? 그토록 높은 양반이 저를 만나러 단둥까지 온단 말입니까?”
“와야지요. 권 선생께서는 한국의 유력한 대통령후보자의 후광을 등 뒤에 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야…아직 후보일 뿐입니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주사위를 던졌습네다. 우리는 5개국 운전자 경주가 성공하길 바라마지 않습네다. 조선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도 다르지 않으리라 믿습네다. 그래서 상무부장도 내려온 것이외다. 생산품을 팔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조선, 양국이 특혜관례를 적용해야 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네다.”
침묵… 공항 밖으로 나오자 중국 측의 보안요원들은 갑자기 침묵으로만 일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용모는 겉으로만 보아서는 어김없는 운전기사, 그리고 시골 촌 동네의 선생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들 뒤를 따라가는 권도일 역시 남의 눈에 띄도록 유난스럽게 보일 리가 없었다.
이곳은 중국 땅, 하지만 권도일은 정확한 지명조차 모르고 있었다. 장차 누구를 만나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으며 어디를 통해 가는지도 몰랐다. 오로지 북으로 가는 것이란 사실만 정확히 알고 있을 뿐.
“자, 그럼… 5개국 운전자 대회 때 다시 보길 희망하오. 우리와는 여기에서 헤어집시다. 행운을 비오!”
중국 측 보안요원들이 신호를 하자 어디선가 검은 세단 한 대가 굴러왔다. 메르세데스 벤츠, 중국 변경에서는 흔치 않은 고급 승용차였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제 상무부장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지요?”
권도일은 얼떨결에 승용차에 올라탔다. 고급 승용차였으므로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는 검은 유리로 차단돼 있었다. 그는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에 시선을 맡기고 있었다. 암록색의 창유리에는 빗방울이 달라붙고 있었다.
“반갑소, 권도일 동무!”
그 순간, 검은 유리창이 스르륵 열리는가 싶더니 섬뜩한 북한 말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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