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7회> 붉은 길, 푸르른 마음 25
재벌 2세는 대통령 후보와의 만남을 영광이라고 밝혔다. 맞는 말이었다. 지나가다 얼굴만 스친 것도 아니고, 건성으로 악수만 한 것이 아니라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담화를 나누고 있으니 영광스러울 만도 했다.
하지만 그 옆에 함께 앉아있는 권도일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이 자리는 서로 덕담을 나누기 위한 자리가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 문제를 협력하여 해결하기 위한 모색의 자리였다. 그런데 대선주자에게선 협력하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오로지 확정된 사실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명령권자의 태도였다.
“말씀 들으셨지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5개국 관통 랠리사업을 유민 제련그룹에서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그 사업을 거성 자동차그룹에서 맡아주시게 되었군요. 게다가 중책을 맡자마자 북한부터 다녀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너무나 졸지에 벌어진 일인 데다가, 전화통화로만 말씀을 듣고 당장 북한으로 향하자니 행여 실수나 하지 않을까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새끼사자는 비록 어리더라도 발톱과 이가 날카로운 법, 장차 백수의 왕이 될 기품을 품고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재벌 2세는 새끼사자로서의 발톱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대선주자와 만났고, 무엇이든지 수용할 마음자세로 그와 협상을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과연 김정은 위원장이 우릴 만나줄까요?”
재벌 2세는 진작부터 궁금해 마지않았던 질문부터 풀어놓았다.
“경제적인 갈증이 어느 정도는 풀릴 만한 이벤트를 벌이겠다는데 굳이 회피할 리 있겠습니까?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보일 것으로 믿습니다.”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문제는 없을까요?”
“물론 서류만으로 확답을 받아도 아무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분위기로 본다면 직접 김정은을 만나시게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만나시게 되면 거성 자동차 그룹의 광고효과는 가히 폭발적이겠지요.”
“폭발적인 광고효과… 정말 기대됩니다, 위원장님.”
하필이면 여당 대선주자의 호칭도 위원장이었고 북한의 김정은도 그 호칭이 위원장이었다. 그러니 재벌 2세는 위원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때마다 부쩍 신경이 쓰이곤 했다. 하지만 권도일은 달랐다.
“위원장님, 불쑥 이런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개발해 오던 에어 뮬과 X-호크에 대한 미래가치를 어떻게 가늠하고 계십니까?”
일종의 담판이었다. 북한에 밀사로 파견되어 아시아를 무대로 한 랠리대회에 북한이 참여토록 종용하는 대신… 거성에 되돌아올 대가는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래형 항공자동차의 가치는 비견할 수 없을 만큼 크지요.”
“그런데… 어째서 그 개발 건에 북한의 눈치를 보고 계십니까?”
권도일은 짧은 비수를 들이대듯 직설적으로 그에게 묻고 있었다. 그러자 대선주자는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너무 가치가 크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아랍권의 석유카르텔로부터 항공자동차 개발 저지를 담보로 많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밀고 당기려면 우리에게도 적잖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결국… 저희 거성 그룹을 통해 경비를 조달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장차 제가 당선되면… 에어 뮬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밀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권도일과, 피하지 않고 대답하는 대선주자의 눈빛이 서로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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