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바람 부는 길(40)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겉으로는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은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가듯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정보를 주면 누군가는 그 정보를 이용하고, 누군가가 정보로 인해 이익을 취하면 누군가는 그 이익에 편승하여 더 큰 부와 정보를 획득하고, 또 누군가는…
거성재벌가와 정치권의 대선주자, 이스라엘의 Urban사와 아랍 석유카르텔 N-Dos, 유민 회장과 그의 아내 신희영, 강유리와 매니저… 이 모든 단체, 혹은 개인들이 서로 간에 톱니처럼 얽혀 돌아가며 이용하거나 이용당하는 모습은 어쩌면 신성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미치겠군.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호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셰익스피어의 명대사를 읊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유호성이었다. 그는 괴로웠다. 하긴 괴롭지 않은 사람이 어찌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소 잡아먹은 귀신처럼 혼잣말을 지껄일까.
‘랠리냐… 골프냐, 그것이 문제란 말이다.’
중얼중얼! 얼빠진 놈이 따로 없었다. 하긴 얼이 빠질 만도 했다. 목숨 걸고 달렸던 몬테카를로 랠리에서는 당당히 꼴찌를 하여 만천하에 웃음거리가 되더니, 3,000만 달러라는… 팔자를 펼 만큼의 거액 상금이 걸린 게릴라 레이싱에는 뭐가 어째? 코-드라이버를 구하지 못해서 참가조차도 못하고 탈락을 해?
그는 침대에 벌렁 누운 채로 케이블 TV방송을 다시 틀었다. 여태껏 2박 3일 동안 수없이 반복해서 보았던 문제의 장면을 또다시 재생시킨 것인데, 이제는 화면을 바라보지 않고 진행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지 복제가 가능한 상태였다.
“오빠!”
이건 스키장 슬로프 한 가운데에서 벌벌 떨던 유한솜의 목소리였고,
“오메, 내 아들아!”
이건 플래카드를 휘날리며 신파극을 연출하던 어머니 신희영의 목소리였다. 지금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본다면 그 화면 가득 담긴 플래카드가 드러날 것이고 그 절절한 사연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을 터였다.
‘내 아들 호성아! 너는 골프선수가 되어야만 해!’
펄럭 펄럭! 바람에 날리는 플래카드를 보며 기막힌 사연을 읽다보면 어느새 화면 가득히 밀고 들어오는 여자 두 명!
‘악덕 M&A 업자, 유민 회장은 각성하라!’ 이건 동생 유한솜이 펼쳐든 플래카드였고,
‘경축! 강유리 선수, 타이거 우즈의 후계자로 선정!’ 이건 골프선수 강유리가 펼쳐 든 플래카드의 절절한 내용이었다.
그뿐이랴? 곧이어 오버랩 되는 탐스런 젖가슴들! A컵과 C컵으로 대변되는 뽀얀 젖가슴이 어지럽게 교차되는 것으로 화면이 이어질 것이었다. 그 장면은 다이내믹하게 편집되어 있었는데… 잘 알다시피 스키장 눈밭에서 토플리스 차림으로 난리를 치던 동생 유한솜과 골프선수 강유리의 모습이었다.
그쯤에서 끝이라면 고민도 하지 않았겠지. 사달이 난 것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 때문이었다.
“미쳤지, 내가 어째서 저런 주책을 떨었을까?”
어째서라니? 기자들이 몰려들어 카메라를 들이대니 정신이 나간 탓이겠지. 화면 속에서는 골프선수 강유리와 멋지게 팔짱을 끼고 만세를 부르는 유호성, 즉 본인의 모습이 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보니 만세를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만세를 부르는 것처럼 치켜든 손에는 ‘내 아들 호성아! 너는 골프선수가 되어야만 해!’ 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그는 신희영의 손에서 플래카드를 낚아채고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나는 위대한 골프선수가 될 테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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