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가 되는 말은 따로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유행어의 조건으로 시대적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해 공감대를 잘 형성하고 재미있어야 하며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친숙한 음감이나 운율을 갖고 있어 중독성이 있고, 무격식,탈권위 등의 느낌으로 민초들에게 통쾌함을 유발하면 더욱 좋다는 점을 제시한다. 유행어 5대 조건이다.
최근 인터넷 사용이 본격화한 1999년 이후 유행어를 몇몇 네티즌들이 정리해 올림으로써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난10년간 유행어는 인터넷에서 생산된 것이 많지만, 1980~1990년대엔 당시 정보를 접하는 주된 매체였던 TV가 가장 많이 생산해냈다. 1950~1970년대엔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신문 등을 통해 보도된 것이 유행어 반열에 오는 비중이 컸다.
정치인과 개그맨, 드라마 작가들은 유행어만들기에 골몰하는 이유는 흥행에 성공할 경우 자신의 가치가 급상승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것은 늘 패퇴한다. 시대정신을 담는 것은 민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의미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고, 시대의 아픔에 대한 경험과 체감이 있어야만 밀도있는 유행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
2000년이후 유행어는 인터넷이라는 명랑하고 자유분방한 특성 때문에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이미지를 담거나 축약된 단어가 많지만, 중세~근대화 이전 시기엔 문장 형태가 많았다. 중세~근세에도 유행어는 있었겠지만, 정확한 문장이나 단어를 고증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기술에 관급 문헌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유행어를 담을 만한 민초들의 기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유행어의 배경에는 평양감사 자리가 그만큼 ‘물 좋은’ 자리이라는 뜻이 숨어있다. 평양은 가장 활발한 대외무역을 펼치던 의주 평양상인을 통제하던 곳으로 숱한 뇌물을 챙길수 있었다. 평양은 그러나 경제적으로 앞서지만 관직진출은 없고 중앙정부의 수탈만 많아 늘 한양도성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찬 곳이기도 했다. 1811년 홍경래가 난을 일으킨 것도 평양에서 의주에 이르는 서북인에 대한 중앙정부의 차별때문이었다.
지금도 많이 쓰는 ‘얼레리 꼴레리’는 어린아이들이 주로 쓰는 유행어로 조선후기 세도정치 무렵에 생겨난 유행어이다. 각종 세도가의 부패로 인해 삼정 등 세제가 문란해지고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어린나이에 벼슬길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얼레리는 ’어린 나리’를 뜻한다. 철없는 벼슬아치들에게 ’얼레리’라고 놀렸고, 꼴레리는 박자를 맞추기 위해 의미없이 붙인 말이다.
몽고족에 복속당한 고려말엔 서글픈 유행어가 있었다. 정부가 강대국의 협박에 못이겨 나라의 안위를 위해 원나라로 우리의 사랑스런 여인들을 ‘공녀’로 보내놓고도 갖은 고생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감사하기는 커녕, ‘환향’이라는 낙인을 찍어 배척한 것은 아직도 파렴치한 행위로 지탄을 받고 있다. 결코 쓰지 말아야 할 이 단어는 1970년대까지 남편의 폭력에 집을 뛰쳐나가거나,소박맞은 여인네들이 아이가 보고싶어 집으로 다시돌아왔을때 폭력적 남편이나 시어머니에 의해 내뱉어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속어를 기피했기 때문에 주로 하층민이 사용했고 그들의 유행어중에는 ’성(性)”적인 것이 많았다. 오늘날에도 쓰이는 ‘엿 먹어라’에 나오는 ‘엿’은 음식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부위를 뜻한다. 특히 편모슬하에서 자란아이를 비하하는 호로자식(흘레자식)은 짐승의 성행위를 묘사한데서 유래된 말로 절대 써서는 안된다. ‘떠그랄’, ‘X브랄’ 등도 성적인 속어였고, ‘XX 두 쪽 차고 육갑한다’는 비굴한 남성들을 향한 여성의 반격이었다.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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