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는 엉망이었어도, 실학과 동서교류의 기운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조선후기에는 개혁 개방이 시대정신이었다. 1890년대 최대 유행어는 개화경, 개화꾼, 얼개화꾼, 개화주머니 등 ‘개화~’를 접두어로 하는 말이 많았다.

기존에는 하의나 상의와는 별도로 복주머니 처럼 차고 다녔지만, 서구문물이 유입되면서 바지 또는 상의 일체형으로 붙은 주머니가 바로 개화주머니였다. 지금도 삼척 등 일부 지방에는 호주머니를 ‘개(화)주머니’ 또는 ‘개화’라고 부른다.

안경을 뜻하는 ‘개화경’이 들어오기 전에는 안경이 대중화되지 못했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은 임진왜란 직전 일본 사정을 탐지하기 위해 파견된 김성일의 것이고, 임진왜란 휴전협상과정에서 명나라대표가 글을 볼때 안경을 꺼내 썼다는 기록으로 미뤄 우리나라의 안경은 16세기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산 안경은 1630년경 경주에서 남석안경을 제조한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워낙 귀한 물건이라 일반인들이 착용하기 어려웠고, 고관대작 일부가 소장했지만, 안경의 공공연한 착용이 예법상 금지돼 대놓고 착용하지 못한 점도 대중화를 가로막았다. 오죽하면 40대 중반부터 눈이 나빠진 정조가 안경없이는 국사를 돌보지 못할 상황임에도 안경 착용 여부를 고민했으며, 안경없이 다니다 임금이 오는 줄도 몰랐던 신하가 자살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얼개화꾼은 개화꾼이 아니면서, 개화꾼인 척 외모와 사상, 지식을 자랑하는 얼치기 개화론자를 말한다. 유사품인 셈이다.

갑오경장(1894년)의 개혁조치의 영향때문인지, 서민들 사이에 옛버릇 그대로 간직하는 사람에겐 “갑오 전(前)”이라 비판하고, 뭔가 사소한 변화라도 있으면 “자넨 갑오후(後)네”라고 말하는 세태가 있었다.

아울러 강화도조약, 병인ㆍ신미양요를 거치면서 서양을 뜻하는 ‘양(洋)~’을 접두어로 쓴 말도 많았다. 양말, 양단, 양옥 등 단어가 이때 나왔다.

일제시대엔 1912년 요미우리 신문에 ‘새로운 여자’ 기획연재물을 계기로 ‘신여성’이라는 말이 1920년대 크게 회자됐다. ‘구여성’의 이미지인 여필종부, 남존여비를 거부한 여성 지식인의 당당함과 세련된 패션, 사교적 마인드를 지칭한다. 신여성이 등장하던 시기는 일제의 이른바 문화통치에 의해 조장된 관념상의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했다. 신여성의 등장은 전통에 대한 부정의식이 조금씩 싹트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나혜석, 김원주, 김명순이 신여성의 상징이자 선구자로 평가된다.

신식교육을 받은 남성들을 지칭하는 ‘인테리(겐챠)’, ‘하이카라’라는 말은 조금만 멋을 내도 붙여주었다. ‘신식’이라는 말은 ‘모던’이라는 접두어를 만들었는데, 모던보이, 심지어 모던 복덕방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일제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사회적 언어 조작’이라는 비판도 있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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