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2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37
역설적이긴 하지만 원한을 품고 살아온 사람일수록 가슴 절절한 사랑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남을 향한 원망이 크면 클수록 가슴속으로 느끼는 사랑의 빈자리도 그만큼 허허로이 느껴지는 것이 정해진 이치다. 권도일은 크나큰 원한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으므로 그만큼 절절한 사랑을 할 자격이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중요한 경기 중이라 하더라도 그 절절한 사랑이 분출되면 잠시나마 받아주어야 옳다는 말이다. 잠시나마….
“너무 긴장한 채로 달렸나봐 손이 서늘해요.”
“긴장한 적 없어. 오로지 유호성을 쫓아가고 싶었을 뿐이지. 그놈을 죽이지 못했으니… 차라리 내가 죽어버리고 싶군!”
또한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상열지사를 벌이기 전에 죽고 싶다는 것처럼 인간의 여러 감정을 일시에 표현하는 말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일시에 사라진다는 것이지만 온갖 잡냄새, 잡맛, 잡소리에서 일시에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죽고 싶다는 말은 일시에 세상 잡사에서 빠져나와 당신 품에 안기고 싶으니 ‘닥치고 안아 달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지선 씨! 차라리 같이 죽을까?”
권도일은 자칫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림없는 일, 김지선 역시 뚜렷한 목표를 지니고 랠리에 임한 선수였다. 거성의 그레이스 팀에 합류하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고난을 겪어왔던가. 레이싱 모델로부터 시작해서 한 계단씩 밟아 올라와 이 자리에 서기까지 내심 얼마나 입술을 앙다물었던가. 그녀는 젖가슴만을 허용했을 뿐 그의 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하면 적극적으로 제어하고 있었다.
“지금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포스트에 도착해서 즐겨요.”
“하지만 지선 씨!”
“어허, 도일 씨!”
조물주의 섭리란 오묘하고도 기막혀서 동일한 목소리로 동일한 이름을 부르는데에도 상황에 따라 수십 가지로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도록 해주셨다. 지금 이 순간, 김지선과 권도일이 서로 이름을 부른 까닭은 동반해서 저승으로 유람가자는 말은 물론 아니었다. 오로지 ‘도일 씨!’하고 힘줘 부름으로써 ‘애처롭지만 참아요’하고 부르짖는 것이었으며, ‘지선 씨’라는 한 마디로 ‘미치겠군, 하지만 고마워!’하는 뜻을 담고 있었다.
젖가슴을 내주었으니 그녀의 몸이 달아오르지 않을 재간은 없었다. 한때 날리던 레이싱 모델이었으므로 그녀의 가슴은 풍만했다. 그녀의 젖가슴을 애무하던 권도일의 손이 어느새 따뜻해진 것일까? 그의 손끝이 스칠 때마다 그녀의 온몸에 전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젊음은 가끔 이런 식으로 발동하는 열정이 탈이었다. 그런 열정 때문에 시속 300㎞를 넘는 속도로 F1을 몰 수 있으며, 다카르 랠리에 출전하여 8956㎞에 달하는 엄청난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참아야만 했다.
“스톱! 손 빼세요. 당장 나가서 엔진부터 점검하자고요. 이젠 엔진의 열도 식었을 테니 유호성을 쫓아갑시다. 그리고 제발 정상적으로 달리자고요. 후진으로 달린다는 위험성…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바람도 느낄 수 없고, 노면의 경사도를 파악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르고, 자신의 파워밴드를 계산할 수 있는 있는 여러 상황들을 외면한 것이라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머신이 언제 코스에서 튕겨나갈지 아무도 모른다니까요?”
“튕겨나간다는 건… 이를 테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협박이기도 하군.”
“협박인지 숙명인지 모르겠지만요.”
권도일이 그녀의 드라이빙 슈트 상의의 단추를 채우며 대답했다. 이제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여태껏 이중으로 여며진 드라이빙 슈트의 중간 언저리쯤에서 그녀의 젖가슴을 끄집어내려고 애쓰던 손으로 그는 다시 헬멧을 고쳐 쓰고 있었다.
“차라리 달리면서 미치는 편이 더 낫겠지요.”
그녀는 팔을 뒤로 돌리고 눈을 감은 채 의자 등받이를 잡은 양손에 힘을 꼭 주었다. 죽도록 달리라는 신호였다. 코-드라이버가 죽도록 달리라는 사인을 보냈으니 어쩌랴, 권도일은 있는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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