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5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30

신비로운 상황…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리가 계획한 것처럼 떠들지 않고, 경박스럽게 행동하지 않으며, 조용히 눈웃음을 치고 있으면 될 것이라 여기겠지만, 그것도 문화적인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모양이었다. 타이거 우즈는 옆자리에 흥부네 식구처럼 몰려 앉아 떠들고 있는 상황 자체가 오히려 신비롭게 여겨졌다는 말이다.

“신기했다는 건, LPGA 선수도 아닌데 어쩌면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공을 깡통 속에 넣을 수 있는지… 그리고 감동적이었던 건,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쩌면 그리도 진지하게 연습에 몰두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었어요.”

“아, 네! 그게 바로 강유리 선수만의 장점입니다. PGA 최경주 선수 잘 아시지요? 동반 라운드도 여러 번 하셨지요? 그 선수도 벙커샷을 연습하는 동안 바닷가 모래밭에서 몇 날 며칠을 지새우곤 했거든요?”

남이 똥 누는데 자기가 힘주는 격이라고나 할까? 유식한 말로 주객전도! 어느새 타이거 우즈의 본격적인 대화상대는 신희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몇 마디 말을 섞더니 아예 강유리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앉고야 말았다. 바야흐로 골프 황제를 상대로 하여 진지한 골프사업을 향한 회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어찌 이 기회를 놓칠쏘냐. 공연히 점잔 빼다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느니 아예 팔을 걷어붙인 셈이었다.

“동양 선수들, 특히 코리아 여자선수들의 사연은 언제 들어도 감명 깊습니다. 혹시 미스 캉! 캉 선수도 LPGA 진출을 원하고 있습니까?”

“어브코스, 어브코스! 물론입니다. LPGA 진출을 위해서 벌써 6개월 동안이나 피나는 전지훈련을 하는 중이에요.”

신희영도 나름대로 리허설을 했던 것일까? 그녀는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동안 강유리 선수가 훈련하며 고생했던 일이며, 장차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기 위해 마련한 전략 등을 술술 쏟아놓기 시작했다.

사실 일은 제대로 풀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남들이 된장국 끓이려는데 고추장 단지 들고 있는 놈처럼 답답한 놈이 또 있을까? 강준호가 바로 그 짝이었다.

‘다리 좀 살짝 꼬아 봐라!’

그는 강유리를 향해 눈을 찡긋거리며 속으로 이렇게 고함쳤다. 물론 마음속으로 외친 것이니 다른 이들의 귀에 들릴 리는 없었다. 이심전심이라고나 할까? 강유리는 허벅지를 내보이듯 슬쩍 다리를 꼬며 영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을 능가하는 요염한 포즈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뇌쇄적인 미소! 볼펜이라도 떨어뜨리고 주워올리면서 가슴골이라도 슬쩍 보여라. 어이고 멍청이 같으니.’

문득 드러난 강준호의 표정은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긴…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할까. 경우에 따라서 끗발 높은 부원군으로 등극할 수도 있을 터인데 느닷없이 신희영이 초를 치고 있으니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강유리 역시 초조하기는 매일반이었다. 그녀는 조만간 틈새를 노려 타이거 우즈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잠시 틈이 생기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유한솜이 한 뭉치의 복사지를 들고 덥석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

“싸인 프리즈! 골프 황제의 싸인 좀 부탁해요.”

무려 한 뭉치! 하지만 타이거 우즈는 싫은 내색도 없이 복사지 낱장마다 일일이 손수 싸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신희영과의 대화는 끝날 기색이 없고…

“혹시 타이거 우즈 선수께서 우리 강유리 양을 제자로 키워주실 수 없을까요?”

“아닙니다. 강유리 선수와 나는 우열을 잴 수 없는 골프선수일 뿐입니다. 난 오늘 모나코에 출장 나왔다가 우연히 강 선수의 연습상황을 보았을 뿐이고, 그 모습이 감동적이어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영어로 only, only! 아무런 목적 없이 오로지 인사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라는 타이거 우즈의 단호한 목소리에 강유리는 문득 서글퍼질 따름이었다.

알리바바 더보기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