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지난 10일 취임한 조영곤(55ㆍ사법연수원 16기)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취임사의 말미에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인용하며 “기나긴 겨울의 암흑을 뚫고 새 생명을 태동시키는 4월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밝혔다.

인용한 문구에서는 빠졌지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이 시는 ‘오히려 겨울은 따뜻했었다’로 이어지는 문구의 시적 긴장감 때문에 검찰에서 대대적인 사정수사나 기획수사를 예고할 때 즐겨 인용된다.

검찰은 조만간 인사가 마무리되는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간첩과 종북세력에 대한 엄단 의지를 밝히고 부정부패와 민생침해 범죄 척결을 강조한 그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대검 중수부 폐지로 각종 대형 비리사건에 대한 수사가 서울중앙지검으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나오는 터여서 더욱 그렇다. 역설적이지만 ‘황무지’는 중수부 폐지의 불씨를 심어놓은 사건의 시작 때도 인용됐다. 2009년 3월 20일. 이른바 ‘박연차게이트’ 수사가 진행 중이던 당시,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며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밝힌 것이다.

중수부장의 발언은 대대적인 사정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그렇게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관용ㆍ김원기 전 국회의장을 비롯한 다수의 국회의원이 수사선상에 올랐고, 칼날은 차츰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검찰은 표적수사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지난해 말 연달아 터진 검사 비리로 직격탄을 맞은 검찰은 지난 겨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개혁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중수부 폐지는 그 중 핵심으로 꼽힌다. 어쩌면 본격적인 검찰구조 개혁이 시작되는 앞으로의 시간은 더욱 잔인할지도 모른다. 4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한 번 ‘황무지’를 읊은 조 지검장의 취임사가 중의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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