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의 작품세계

1940년 충남 서천군 서천면 선암리에서 태어나 1964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3학년 때 쓴 희곡 ‘영광’이 국립극장 극본 공모에 당선돼 1962년 이 공연으로 신인예술상을 받았다. 1967년 신춘문예 당선작인 ‘웨딩드레스’는 한국 최초의 부조리극, 1969년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는 한국 최초의 모노극으로, 연극사적으로도 중요한 작품이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는 세상에 주눅들고, 아내에게 구박 받다 끝내 성적 불구상태에 빠진 현대 남성의 스트레스와 꿈을 마임과 표정, 재치 있는 대사로 표현해 당시 일대 화제를 일으켰다. 1970년대 들어 작품 속에 한국 토속문화에 탐구정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남도지방 장례풍속을 담은 ‘초분’(1973년), 세조반정과 사육신의 이야기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태’(1974년), 이춘풍전을 아내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춘풍의 처’(1976년), 별주부전과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따 온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1990년), 은산별신굿을 차용한 ‘백마강 달밤에’(1993년) 등 대표작에서 풍속과 우리 운율을 복원하고, 한국적 정감의 뿌리를 찾으려 노력했다.

‘태’, 옛 백제 병사의 원혼을 위로하는 ‘백마강 달밤에’와 6ㆍ25전쟁의 상흔이 남은 지리산 마을을 배경으로 한 ‘산수유’(1980년), 김구 암살범, 광주 진압군을 한자리에 모으는 ‘천년의 수인’(1998년), ‘잃어버린 강’(2000년) ‘만파식적’(2005년) 등의 작품에선 역사적 사건이 소재로 쓰였다.

제주도 방언을 대사로 쓴 ‘앞산아 당겨라 밀어라 오금아’(2002년) 등 우리말과 지방색 복원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작품은 굿을 통한 해원(解冤) 등 풍속의 재활용, 민족과 국가, 역사와 개인의 대립, 여성성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1984년 극단 목화레파토리 컴퍼니를 창단해 현재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1999년 목화 전용극장 ‘아룽구지’를 개관해 연간 3~4개 작품을 레퍼토리로 올려 연 1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지만, 경영난 때문에 문을 닫았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지냈고, 서울예술대 연극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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