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7> 감추어진 승부 (61)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와이 콜 미? 아이 엠 어 밀리언 박스!”
가장 먼저 신발을 꿰차고 나온 사람은 역시 ‘이소타 프라치니’의 오너였다. 그는 아침 판 인터넷 신문을 큼직하게 장식한 제 기사에 취해 휘청휘청, 아직도 멀미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임 어 밀리언 박스, 투!”
신문기사를 보며 뽐내던 ‘이소타 프라치니’의 오너가 가뜩이나 미웠는데… 다른 이들이 마냥 구경만 하고 있었을까? 어떤 이들은 맨발로, 어떤 이들은 슬리퍼 차림으로 마치 단거리 경주를 하는 것처럼 저마다 강유리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꼴에 더욱 배앓이 하던 사람은 바로 클래식 카 동호회 회장인 ‘움라우트 패튼’이었다. ‘이소타 프라치니’의 오너야말로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해서 맨 앞에 섰을 뿐이고, 운 좋게 강유리 선수를 차에 태웠을 뿐인데 혼자서 신문기사를 장식하다니…
“아임 어 이찌방 오브 밀리언 박스!”
회장 ‘움라우트 패튼’은 줄줄이 모여든 오너들을 뒤로 밀치며 강유리와 예원희 앞으로 다가섰다. ‘이찌방’이라면 최고를 뜻하는 일본 말 아닌가… 아마도 그는 강유리 선수를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코리안 들예요. 나는 싸우스 코리안, 이쪽은 노스 코리안, 나는 골퍼… 이쪽은 포토그래퍼, 유 노우? 언더스탠?”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 하여간 난리법석을 떠는 중에도 ‘움라우트 패튼’은 자기를 독일인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클래식 카 동호회와 연관된 어떤 일이건 회장인 자기의 결재를 얻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저 꼴 좀 봐요. 우리 앞에서 잘난 체 하느라고 정신이 없어. 안 그래요? 예원희 씨?”
“고렇디요? 잘난 체 하는 거 맞디요?”
“갑부들이고 나발이고 간에 저 양반들은 우리가 드리운 낚시에 딱 걸려든 거예요.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세요.”
강유리는 이렇게 속삭이고 나서 본격적으로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말이 협상이지 일방적인 지시와 다름없었다. 영어와 불어, 독어, 일본어, 한국어가 총 동원되고 보디랭귀지마저 가미된 국제적 협상이라고나 할까?
길고 지루한 설명, 가끔은 액션이 담긴 퍼포먼스까지 벌인 끝에 드디어 강유리의 뜻이 클래식 카 동호회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1, 싸우지들 마세요. 오늘 촬영 땐 동호회원들이 타고 온 모든 차량 앞에서 모델이 되어 사진 을 찍어드릴게요.
2, 하지만 차량이 많다보니 일일이 서서 찍을 수는 없어요. 차를 줄지어 세워놓으면 내가 차 지붕 위를 뛰어다닐 거예요. 그 모습을 우리 예원희 작가가 촬영할 겁니다.
3, 찍는 모습은 요란해도 낱장 사진으로 인화해 보면 멋질 거예요. 클래식 명차 위를 훨훨 날 아 다니는 비키니 골프 천사… 얼마나 멋져요?
4, 단, 그 사진을 사우스 코리아의 방송광고로 내보낼 것이고요. 노스 코리아의 당 기관지에 싣게 될 거예요, 게다가 모델료는 공짜! 유 노우? 유 언더스텐?
얼토당구장 같은 내용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클래식 카 동호회 회장은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예스, 오케이를 연발했다. 동호회원들도 모든 차량을 골고루 배경으로 써준다면야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들 좋아했다.
“예원희 씨, 우리가 세계의 명차들을 짓밟고 다니게 되었걸랑요? 가뜩이나 세계열강들에게 짓밟혀서 주눅 든 북한 당국자들이 볼 때… 얼마나 신나겠어요? 그쵸?”
강유리의 이 말에 예원희의 기분도 덩달아 고조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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