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 여행지 보홀의 속살 2편
K팝 소녀팬 자라의 로복강 버스킹
초민감 안경원숭이,걸크러쉬 암컷
절경속 정신문화 성지, 바클레욘 성당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필리핀의 한복판 거북 모양의 섬 보홀은 천혜의 자연유산이 있고, 주민들의 보존 의식이 강해 세계 ‘뉴노멀’ 여행자들 사이에 인기가 상승하는 곳이다. 예로부터 경치 좋은 곳에 인심 나고 정신문화가 꽃 핀다고 했다.
이곳엔 로복강, 희귀생물 보호센터, 자연 정글, 초콜릿힐 등 잘 보존된 청정생태자원 외에,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성당도 자리하고 있다.
▶청정 자연 풍경 속에서 핀 올곧은 정신문화= 개발이 더뎌, 도로가 뚫린 것도 얼마되지 않은 지역임에도, 중세 유럽인과 원주민들이 100년 동안 정성스럽게 성당을 지은 것을 보면, 꼭 자신의 정신적 지주를 세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다. 요즘은 배산임수의 친자연 리조트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필리핀 제3공화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사이사이 전 대통령에 이어, 1957년 집권한 카를로스가르시아 전 대통령이 보홀 출신으로,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진 이곳 발전을 위해 도로를 닦아 경제-관광 루트를 개척했지만, 집권 4년차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보홀의 발전도 한동안 멈췄다. 개발이 더뎌,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음에도 주민들은 일찍이 자연 및 생물환경 보존에 나섰다. 지속가능성에 관한한 보홀 주가 필리핀의 선두주자이다.
초콜릿힐 남쪽 28km 지점에 있는 타르시어 보호센터(Tarsier Conservation Area)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영장류로, 영화 ‘그렘린’의 모델이 되기도 한 ‘안경원숭이(타르시어)’를 조심스럽게 관찰할 수 있다.
몸 길이 10~12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몸에 이보다 긴 꼬리,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툭 튀어나온 눈이 인상적인 보호종이다. 필리핀 4개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보홀 주는 안경원숭이 보호구역을 처음으로 만드는 등 생물자원 보호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안경원숭이의 일생, 쿨하게 돌아서는 암컷= 보홀사람들에게 ‘마막(Mamag: 큰 눈)’이라고 불리는 안경원숭이는 영장류이지만, 하위 분류체계에선 일반 원숭이와 다르다. 허파가 6개나 된다. 새처럼 곤충을 주식으로 한다. 두 눈이 몸의 1/3이나 되지만 시야가 좋지 않아 목을 180도 돌려 사물을 본다.
1마리당 3000평을 관할하는 자기 영역 수호 본능이 매우 강하다. 누군가 침범하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죽을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싸운다. 더욱 민감해지는 밤엔 곳곳에서 안경원숭이의 하이톤 외침이 들린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스스로 숨을 참거나, 뇌의 연골부분을 고의로 박치기해서 자살을 감행한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관람객들이 지나칠 정도의 조심성으로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안경원숭이가 3000평이나 되는 드넓은 영역을 하루 한번 이상 순찰할 수 있는 것은 한번에 3~5m 점프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낮에 잠을 자고, 밤에 자기 영역 순찰을 도는 야행성이다.
짝짓기는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넉달간 이뤄진다. 암컷이 수컷 영역에 들어가 달콤한 콧소리 허밍을 내거나 암내를 풍기면서 2~3일 구애하는데, 정작 스킨십은 5초 만에 끝난다. 그리고 암컷은 ‘쿨’내 나게 훽 자기 구역으로 돌아가 6개월 임신한 뒤, 보통의 영장류처럼 딱 한 마리를 낳는다. 1년을 젖 먹여 키운 뒤, 자식에게 “네 영역을 개척하라”며 내보내고 나가지 않으면 엄마-자식 간 대판 싸움도 난다. 엄마의 백전백승은 섭리다.
초민감한 보홀 안경원숭이 관람구역에 5~10m 간격으로 이들이 ‘밀집’돼 있는 이유는 이들 모두 몸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어디가 아프다 보니, 건강할 때 만큼 민감하지 않다. 평온하던 아이가 관람객의 사진 촬영이 거듭될수록 눈빛이 매섭게 변하기도 한다. 여행자들은 중증환자를 캐어하는 호스피스를 둘러본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관람객은 이 희귀한 동물, 몸이 성치않은 이들을 대하면서, 지구상에서 공생하는 개체들 끼리 상호 존재감을 인정해주는 자세 등 배우는 점도 많다. 치료가 끝나면 자기 구역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병중인데 지구촌 손님들을 위해 그 성정을 힘겹게 참아주니 뭉클하기도 하다.
▶BTS를 사랑한 로복강 소녀의 열창= 안경원숭이 관람구역 인근 로복강(Loboc River)은 여러 굽이 휘돌아나가며 보홀 남쪽 정글을 둘로 가르고 나무칼로 유명한 로아이 마을 하구로 빠져나가는데, 여행자를 태운 엔터테인먼트 미식 크루즈는 안전을 위해 상류쪽 직선에 가까운 노선 만 운항한다.
‘필리핀의 아마존’이라는 불리는 로복강 폭은 서울 중랑천 정도로, 강변 야자수가 강물 쪽으로 기울여 이 거북선을 호위한다. 주변엔 강과 정글을 무대로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민속촌도 있다. 선상 뷔페에는 닭볶음, 돼지고기, 필리핀 나물 등 10여가지 음식이 차려져 있다.
거북선을 닮은 유람선 버스킹 때엔 필리핀, 미국, 한국 노래가 번갈아 흘러나온다. 6년전 방문했을 때엔 이 거북선에서 ‘강남스타일’이 그렇게 많이 흘러나오더니, 이번엔 필리핀의 20대 가수가 올해로 71세 된 가수 은희의 1971년 노래 ‘사랑해’를 부른다. 한국문화에 대한 필리핀 사람들의 폭넓은 관심이 느껴진다.
세부에서 가족여행은 온 자라(15)-자렐(12) 베트니 자매는 K-팝 특히 방탄소년단(BTS) 광팬임을 고백했다. 그리고 한미필 3개국 노래를 골고루 즐겨부른다. 별명이 잘먹어 ‘잡잡’이라는 언니 자라가 마이크를 잡고, 멋지게 팝송을 불러 크루즈에 탄 다국적 승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보홀의 청정자연 회화 작품을 전시판매하기도 하는 크루즈 선착장 주변엔 짚라인과 케이블카도 있는데 통합이용권을 끊을 수도 있다.
보홀에는 이밖에 라일라 고래상어 와칭 탐험, 발리카삭 다이빙과 바다거북과의 호핑, 정어리떼와 수중체험을 하는 나팔링 포인트 레저, 아바탄강 반딧불 투어 등 자연친화적인 체험여행프로그램이 많다.
▶오지에 세워진 중세 성당= 주도인 탁빌라란과 루아이마을 가운데 쯤 해안가에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바클레욘(Baclayon) 성당이 있다. 그만큼 자연생태지역이 보홀의 가톨릭역사도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95년 착공해 1727년 완공됐으니 공사기간만 130여년이다. 건축재료가 모래와 산호가루를 진흙으로 버무리고, 접착제로 계란 흰자를 썼으니, 단단하게 다지면서 건축물을 조금씩 올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종탑은 1835년에야 세워져, 지금의 모습을 완성한다. 태풍과 지진에 무너지고, 불에 타기도 하는 등 험로를 걸었지만, 지금도 꿋꿋하게 보홀섬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있다.
건축재료 부족으로 튼튼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여겨,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사르대학성당 처럼, 건물을 지지하기 위한 옆벽에 돌출형 바깥기둥을 추가로 설치했다.
스커트를 입은 여성 관광객에겐 보자기를 내어주면서 좀더 정숙한 모습으로 입장하기를 청한다.
이곳에서 사역하던 피오(Pio) 신부는 주민들의 병을 잘 고쳐주어 추앙받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손에 못 자국이 나고 피를 흘려, 성인 반열에 올랐다. 옛 수녀원이다가 지금은 박물관이 된 곳에는 수백년 유물과 종교예술품이 전시돼 있다.
제단 부근의 피에타상은 바티칸의 원본보다 아들이 엄마보다 훨씬 나이들어보이도록 제작돼 눈길을 끈다. 원본 작가 미켈란젤로는 이같은 주위의 지적에 “현숙한 여인은 늙지 않고, 예수님은 성도의 고뇌를 모두 지셨다”는 말로 응수한 바 있다.
때 묻지 않은 생태와 착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곳이라, 때론 무장세력에 지배당하고, 선진문명국의 시선에선 발전이 더디다고 느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갈등과 차별을 넘어 모두가 행복을 느낄수 있는 세상이 인류 대다수의 소망’이라는 말이 맞다면, 보홀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자족하며 사는 모습에서 인류의 최종 목표가 어떤 모습일 지 얼추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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