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 높은 임금 수준 대비 낮은 대당 수출 단가 - 고비용ㆍ저효율 구조, 협력업체 및 소비자에 악영향 - 노사간 협력 및 노동유연성 등 뒷받침 돼야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가 컴컴한 터널 속에 갇혀 빠져나올 줄 모르고 있다. 현대ㆍ기아자동차의 G2(미국ㆍ중국) 시장 판매량 감소와 갈수록 줄어드는 내수 판매량 등 수출과 내수 모두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지엠(GM) 사태가 터지며 국내 자동차 생산량이 멕시코에 역전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올해 1,2월 국내 생산 자동차 대수가 59만9346대에 그치며 같은 기간 멕스코 자동차 생산량(63만2107대)보다 뒤쳐진 것이다. 국가별 자동차 생산량 순위도 6위에서 7위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추락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고비용ㆍ저효율의 생산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지엠 사태로 이같은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만큼, 지난 1950~1960년대의 일본, 2000년대 초반의 독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 등이 고비용ㆍ저효율의 생산구조를 바꾸며 자동차산업을 회생시켰던 것을 선례로 삼아 우리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고비용ㆍ저효율’ 생산구조, 협력업체에도 악영향”= 지난 15일 서울역 KTX별실에서 열린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진단과 처방’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고비용ㆍ저효율의 생산구조를 허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국내 5개 완성차 업체의 평균 임금 수준은 2016년 기준 9213만원으로 도요타(9104만원)나 폴크스바겐(8040만원)보다 높다. 반면 대당 수출 단가는 이들 업체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도요타의 대당 수출 단가가 2만3000달러, 폴크스바겐의 대당 수출 단가가 4만700달러인 반면, 국내 5개사의 평균 수출 단가는 1만4300달러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고비용ㆍ저효율’ 구조인 셈이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이같은 생산구조가 완성차업체는 물론 자칫 협력업체들의 위기까지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완성차업체를 정점에 두고 1~3차 협력업체 등이 긴밀하게 연계된 자동차산업에서 완성차업체의 글로벌 경쟁력은 협력업체의 생존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한 한국지엠의 부품 협력업체들 역시 납품 물량이 급감하며 매출액 감소, 가동률 저하 등의 경영 위기에 처한 상태다. 1차 협력업체들은 지난달 기준 공장가동률이 50~70%대로 급락했고, 올해 1~2월 매출액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0% 가량 줄어들었다.
완성차업체의 실적 부진으로 다른 완성차업체와 거래를 하더라도 한계는 있다. 손해 등을 만회하기 위해 2차 이상 협력업체들은 일자리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설상가상 협력업체의 경영 악화는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게 된다. 이승길 교수는 “협력업체의 경영 악화로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납품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이는 완성차 업체의 차량 가격을 상승시키게 되고, 소비자들의 반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생산구조 탈피, 노사간 협력ㆍ노동유연성 개선 뒷받침 돼야”= 전문가들은 고비용ㆍ저효율 생산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노동조합과 사측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한국지엠은 실적하락에도 불구하고 2013년(7200만원) 대비 2016년(8740만원) 연봉이 약 20%가 증가했다으며, 2014년 이후 3년간 약 3조원에 육박하는 적자에도 1000만원 상당의 성과금을 지속적으로 받았다”면서 “기업은 망해도 노조는 살아남는다는 노동계의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제너럴모터스(GM)의 태도 전환과 정부의 지원 등 다양한 요소에 앞서 무엇보다 노사간 협력이 가장 중요하단 것이다.
그러면서 최승노 원장은 2009년 파산 이후 부활한 미국지엠, 2013년 국내공장 철수 위기를 극복한 르노삼성 등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금 삭감, 복지혜택 축소 등 사측과 ‘뼈를 깎는 고통’을 함께 나눈 결과 실적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제도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한국지엠이 고비용ㆍ저효율 구조에도 불구하고 제조원가 중 비용절감이 용이한 인건비조차 줄이지 못했던 주요인은 우리 노동법제가 ‘망하기 전에는 회사의 희생/자구노력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면서 “1년 단위의 임금협상을 3~4년 단위의 중장기 협약으로 체결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 및 기업 정상화를 위해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개선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