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사주 매입에 착수한 지 3주 만에 신고 물량의 절반가량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 회사가 투입한 금액만 25조원에 달한다. 개인과 외국인의 매도 공세 속에서 코스피를 떠받쳐온 사실상 유일한 매수 주체였던 만큼 매입이 끝난 이후 수급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개장 전 기준 삼성전자는 자사주 취득 신고 수량의 52.17%, SK하이닉스는 43.00%를 체결 완료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1일 공시한 취득 예정 수량 5328만5968주 가운데 2780만주를, SK하이닉스는 지난달 19일 공시한 2407만주 가운데 1035만주를 사들였다.
체결 누계 금액은 삼성전자 7조2570억원, SK하이닉스 17조7250억원이다. 두 회사의 자사주 매입으로만 약 25조원어치 주식이 시장에서 소화된 셈이다. 체결 금액을 수량으로 나눈 평균 매입 단가는 삼성전자 주당 약 26만1000원, SK하이닉스 약 171만3000원 수준이다.
두 회사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메모리 반도체 호황 속에 많이 늘어난 현금을 바탕으로 주주환원과 임직원 보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19일 이사회를 열고 40조43억4000만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을 결의했다. 발행주식총수의 약 3.3%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매입을 마친 뒤 전량 소각한다. 국내 상장사 자사주 소각 사례 가운데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는 이틀 뒤인 21일 올해 90조~110조원 규모의 주주환원 시행 방안을 내놓으면서 15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함께 의결했다. 임직원 보상용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노사 합의를 통해 반도체 부문 특별성과급을 자사주로 지급하기로 한 바 있다.
이렇게 사들인 물량은 수급 통계상 ‘기타법인’ 순매수로 잡힌다. 상장사가 장내에서 자기 회사 주식을 매입하면 투자자별 매매동향에서 기타법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매입을 시작한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기타법인은 이달 3일을 제외한 모든 거래일에 1조원 이상 순매수했다. 이 기간 누적 순매수액은 23조384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사주 취득에 실제 투입한 24조9820억원과 상당히 비슷한 규모다.
기타법인의 전체 매수액을 두 회사의 자사주 취득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최근 기타법인 수급에서 두 회사가 차지한 영향력이 매우 컸다는 점을 보여준다.
같은 기간 개인은 17조4990억원, 외국인은 7조9460억원을 순매도했다. 두 투자 주체가 25조원 넘는 매물을 쏟아냈지만 기타법인이 이를 대부분 받아내며 지수 하단을 지켰다. 코스피는 지난 9일 7051.64로 장을 마치며 7월 23일 이후 33거래일 만에 종가 기준 7000선을 되찾았다. 개인의 강한 매도세에도 코스피가 오름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자사주 매입이었다.
문제는 두 회사의 자사주 매입이 끝난 이후다. 남은 취득 물량은 삼성전자 약 2549만주, SK하이닉스 1372만주다. 지금까지의 평균 매입 단가로 단순히 환산하면 약 30조원 규모다. 3주 만에 절반가량을 소화한 속도를 고려하면 공시상 기한인 11월보다 이른 시점에 매입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매입이 종료되는 순간 최근 코스피를 사실상 홀로 떠받쳐온 매수 세력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기타법인의 매수세는 새로운 투자 자금이 유입된 결과라기보다 기업이 정해진 규모와 기간 안에서 집행하는 한시적 수급에 가깝다. 새로운 수급 주체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사주 매입이 끝나면 코스피에는 매수 주체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사상 처음 종가 기준 9000선을 넘어서고 장중 9300선까지 올랐던 전고점을 회복하기 위한 동력도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코스피 반등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수급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매크로 압력에 적극적 매수세가 부재한 가운데 자사주 매입 등 기타법인이 제4의 수급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 반등의 지속을 위해서는 주요 수급 주체인 외국인·개인 복귀 가능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는 만큼 매크로 환경과 기업의 이익 등 조건을 점검해본다”며 “격한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이탈한 개인의 투심을 돌려세우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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