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오늘 미세먼지 수치 괜찮네”
이제는 외출 전 한 번씩 꼭 확인하게 되는 미세먼지 수치. 농도가 높으면 마스크를 챙기고, 농도가 낮으면 자연스레 마음을 놓게 된다.
문제는 이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바로 기존의 숫자로는 제대로 위험성이 반영되지 않는, 이른바 ‘고위험’ 미세먼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기후변화와 함께 커지는 산불 위험이 있다. 기온이 오르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며 극단적인 산불이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 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산불 연기가 통상의 미세먼지를 뛰어넘는 건강 위험성을 가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같은 농도를 나타내더라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는 것.
근처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때만 위험에 노출되는 것도 아니다. 산불 연기는 수백, 수천km를 날아 국경과 바다를 건너 이동한다. 이에 세계 대기질을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산불이 발생한 며칠만 조심한다고 끝날 문제도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산불 연기는 장거리 이동하며 대기질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심지어 어렵게 줄여온 미세먼지 개선 효과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7일 공개한 ‘2026 대기질·기후 회보’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대기질 건강위험 평가 방식이 산불 연기에 따른 건강 피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산불에서 발생한 미세먼지가 건강에 더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초미세먼지는 크기로 종류를 나눈 개념이다. 지름이 2.5㎛ 이하인 입자는 어디서 나왔든 모두 PM2.5 초미세먼지에 해당한다. 하지만 몸에 들어왔을 때까지 모두 같은 게 아니다.
산불 연기는 나무와 식물 등이 타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물질의 혼합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산불에서 배출되는 입자 물질 질량의 약 90%는 PM2.5 이하 크기다. 하지만 초미세먼지뿐 아니라 오존과 이산화질소,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납 등 독성금속도 포함될 수 있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랜싯 플래니터리 헬스’에 발표된 연구에서 연구진은 2004~2022년 유럽 32개국 654개 지역, 인구 약 5억4100만명의 사망 자료를 분석했다. 해당 분석에서 일반적인 초미세먼지 위험도를 적용할 경우, 산불에서 발생한 초미세먼지로 인한 사망 부담이 최대 93%까지 과소평가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사망자 추정에서도 크게 차이가 벌어졌다. 연구진이 산불 PM2.5의 건강 영향을 따로 반영해 계산한 결과, 조사 기간 산불 연기의 단기 노출로 인한 사망자는 연평균 535명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산불 PM2.5도 다른 미세먼지와 건강 영향이 동일하다고 가정해 계산하자 연평균 사망자는 단 38명으로 줄었다. 같은 산불 연기와 같은 사망자료를 놓고 계산했는데도 사망 부담 추정치가 약 14배 벌어진 셈이다.
문제는 위험성이 큰 산불 연기에 노출될 가능성 자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온이 높아지고 가뭄과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며, 산불이 더 자주 강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WM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극단적인 산불 연기 노출 사건은 1990년대 이후 약 3배로 늘었다. WMO가 인용한 연구는 2010~2018년 산불 연기로 인한 초미세먼지 단기 노출이 전 세계에서 연평균 약 10만명의 추가 사망에 기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산불 등 화재에서 발생한 초미세먼지에 노출돼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연평균 약 6만9000명이었지만, 2000년대 8만9000명, 2010~2018년에는 9만9000명으로 늘었다. 2010년에는 한 해 약 12만명에 달했다.
기후변화가 산불 발생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전체 화재 초미세먼지 관련 사망자 중 기후변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대 1.2%에서 2010년대 12.8%까지 10배가량 늘었다.
산불 발생 인근 지역에만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23년 발생한 캐나다 대형 산불 당시, 연기는 남쪽으로 이동해 미국 뉴욕의 하늘까지 주황빛으로 덮은 바 있다. 당시 연기는 대서양을 건너 서유럽까지 도달하기도 했다. 산불 연기가 바람을 타고, 최소 수천km가량 이동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 경북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당시 산불 영향권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순식간에 치솟았다. 그리고 산불 지역에서 수백km 떨어진 청주와 서산에서도 산림 연소와 관련된 대기 중 입자 성분 변화가 나타났다. 심지어 일본 일부 지역의 대기질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산불 발생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미세먼지 규제로 인한 대기질 개선 성과를 상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와 공장 등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 사이, 산불이라는 또 다른 오염원이 대기질 개선을 방해하는 셈이다.
WMO는 “극단적인 산불 기상이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WHO 대기질 지침을 충족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WMO에 따르면 유럽과 북미에서는 각종 규제로 산업과 교통 부문에서 발생하는 초미세먼지 배출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산불 활동이 활발했던 캐나다 북부와 러시아 일부, 아프리카 중서부에서는 평년보다 높은 촘미세먼지 농도가 나타났다. 산불 연기가 추세를 거스른 셈이다.
기후변화가 이어질수록 고온·건조한 환경이 강해지며 극단적인 산불이 발생하기 좋은 기상조건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산불에서 만들어진 미세먼지가 더 이상 일시적이거나 국지적인 대기오염 문제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산불 미세먼지의 위험을 기존 초미세먼지와 똑같이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WMO는 “현재의 대기질 위험 평가는 산불 연기가 가진 위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산불 유래 미세먼지의 특성을 위험평가에 별도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나라 역시 산불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립산림과학원은 기후변화가 이어질 경우 2100년경 국내 산불 위험이 1971~2000년보다 최대 158%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기온 상승에 따른 겨울철 산불 위험 증가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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