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배임죄, 기업 영향’ 보고서

119곳 분석, 7분기만 현금비율 상승

위험회피 성향 키워…투자보다 현금

“경영판단원칙 법률에 명문화 시급”

배임죄 기소 공시 이후 기업의 현금보유 비율이 5.4%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배임죄 적용이 기업의 혁신과 투자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어 ‘배임죄 구성요건 명확화’와 ‘경영판단원칙의 법제화’가 시급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에게 의뢰한 ‘배임죄 적용이 기업의 위험회피 성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2016~2026년 배임 기소 사실을 공시한 119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공시 시점으로부터 일곱 분기 만에 현금보유 비율이 5.4%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공시 전후 여덟 분기에 걸쳐 분석 대상 기업의 평균 현금 보유비율(12.0%)의 약 45%에 달하는 수치다.

보고서는 현금보유 확대가 기업의 위험회피 성향 강화에 따른 것으로 해석했다. 기업의 재무정책 기조 자체가 보수적·위험회피적으로 전환됐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경제계는 배임죄 관련 규제를 두고 구성요건과 적용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2015~2024년 배임·횡령죄의 1심 무죄율은 평균 6.2%로, 형법 전체 범죄 평균(3.0%)의 두 배를 웃돌았다.

처벌 수위 역시 주요 선진국 대비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영국은 별도의 배임죄 규정 자체가 없고 관련 범죄를 사기·횡령죄, 민사적 책임으로 다룬다.

대륙법계에 속하는 독일·일본의 경우 경영판단원칙을 폭넓게 적용해 고의성이 없는 경영진에 대해선 책임을 제한한다.

반면 한국은 형법상 일반·업무상 배임죄 외에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을 통해 이득액 50억원 이상일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주요국 중 유일하게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보고서는 현행 배임죄 규제가 경영진의 고의적 사익 편취를 제재하기 위한 본래 취지를 넘어 혁신을 위한 정상적인 경영활동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본부장은 “이번 연구는 배임 기소가 최종 유·무죄 판단과 무관하게 기업의 혁신과 투자활동을 위축시킬 소지가 있음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이라며 “경영상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합리적 의사결정이 위축되지 않도록 배임죄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고 경영판단원칙을 법률에 명문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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