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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의 모든 국가에 고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90일 연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중국을 명백히 표적으로 삼는 등 변덕스러운 움직임으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이것이 트럼프 경제팀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소식이 아닐 수도 있다. 무역 관세는 분명 해롭지만, 쉽게 해제될 수 있다. 관세의 인상과 철폐는 국가 간 신뢰에 큰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지만, 금융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조치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미국처럼 개방된 자본 계정을 가진 국가들은 갑작스러운 신뢰 붕괴가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안정적으로 자본을 유치해왔으며, 이는 무역 적자의 규모 자체보다도 중요한 요소다. 미국은 자국의 무역 적자를 외국 자본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외국 자본이 이에 대한 프리미엄을 요구해오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미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유지한 덕분이다.
이처럼 미국이 무역 불균형은 물론 과도한 재정 적자까지 외국 자본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선순환 구조가 위기에 처할 수 있고, 이는 미 달러의 강력한 기축통화 지위도 위협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잠정적으로 발표한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에 기인한다. 최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으로 임명된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이 제시한 이 구상은 상충되는 복수의 목표를 담고 있다.
주요 목표 중 첫째는, 명확한 근거가 제시된 건 아니지만 현재 평가절상돼 있다고 여겨지는 미 달러 가치를 낮추자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기존의 미국 국채를 비거래성 장기채인 100년 만기 무이표채로, 심지어는 영구채로라도 교환함으로써 미 재무부의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이자는 것으로, 이들 채권은 시장 금리보다 낮은 수익률로 거래될 예정이다.
미국의 무역 및 재정 적자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불균형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마러라고 합의’의 근거다. 트럼프가 최근 발표한 수입 관세는 무역 적자 감소에 일조할 것이고, 특히 ‘트럼프식’ 세계관에서는 수입 관세와 조세가 동일시됨에 따라 재정 적자 감소에도 일조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수입 관세는 미 달러 가치를 오히려 절상하는 경향이 있어, ‘마러라고 합의’의 취지와 배치된다.
이러한 상충 가능성으로 인해 트럼프가 관세 부과에만 그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달러 약세라는 트럼프의 주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에 관세만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 달러 관련 금융 거래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더 큰 충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실제 제안 내용을 살펴보면, 미 정부는 외국 정부들이 현재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만기가 훨씬 긴 장기채로 교환하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장기채는 할인된 가격에 발행되며, 미국은 만기 전까지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미 정부는 연간 이자 지급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미 달러 약세를 향한 국제적 공조를 이끌어냄으로써 자국의 경쟁력도 제고할 수 있다.
외국 정부들이 이처럼 딱히 끌리지 않는 조건을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영향력이 아직까지는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외국 정부들이 이를 수용할 것이라 믿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안보 보장을 철회하겠다고 위협하거나 비협조적인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태세다.
미국 정부가 얻게 될 이득은 분명하다. 공공 부채에 대한 이자 지급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달러 약세를 통해 대외 경쟁력도 제고할 수 있다. 이는 트럼프의 미국 산업 부흥 목표와도 일치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득을 뛰어넘는 훨씬 큰 문제들이 동반될 수 있다. 해외 채권자들이 위의 조건들을 강제로 수용하게 될 경우 국제 금융 안정성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명백한 문제다. 특히 세계에서 유동성이 가장 높은 안전자산인 미 국채가 비거래성 자산으로 전락하게 되면 파장은 더욱 크다.
이러한 유동성 감소는 역설적으로 투자자 이탈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미국의 자금 조달 비용을 장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더 심각한데, 미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 달러 가치를 의도적으로 절하하면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고, 이는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미국의 무역 및 재정 적자 충당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 목표 달성을 위한 강압적 수단이 국제 관계를 경색시킬 수 있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의존해온 동맹국들이 소외되면서, 새로운 경제협력국은 물론 대체 통화에 대한 탐색도 가속화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믿기 어렵겠지만 트럼프의 향후 조치는 최근의 전면적 수입 관세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으며, 실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이른바 ‘마러라고 합의’는 트럼프의 핵심 경제 참모들에 의해 이미 작년 11월 대선 이전부터 계획돼 왔기 때문이다. 이 합의는 더 큰 이슈를 다루는 만큼 더 위험한 계획이고, 해외 채권자들이 불리한 조건을 수용하도록 만들어 달러 약세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시도다.
이로 인해 금융안정성과 미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으며, 특히 강압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 정도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요컨대 투자자들은 관세 문제보다는 미 달러의 미래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소유하고 있는 별장 ‘마러라고(Mar-a-Lago)’에서 이름을 따왔다. 공식적으로 이런 합의가 발표된 적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책사인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작년 11월 작성한 논문이 이 합의가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세간의 주목을 받게 한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핵심은 현재 미 달러화의 강세가 미국 상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관세 폭탄으로 무역 파트너국을 압박하고, 미국의 안보 우산을 거둬들이겠다는 위협으로 달러화 약세를 인위적으로 현실화하겠다는 식이다. 흔히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발표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미국 서독 프랑스 영국 일본 등 5개국의 달러 강세 억제 합의)’와 비교한다. 환율이 공통 이슈라는 점에서다. 하지만 40년 전엔 합의국 간 동의가 있었다. 그러나 ‘마러라고 합의’는 참여국을 특정하기엔 이르고 강압적 수단이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다르다.
ho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