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5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24

강준호야말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부녀가 합심해서 ‘유민그룹 망쳐먹기 작전’에 올인했건만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던 중 오아시스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빠 말씀대로 했지만 제대로 풀린 일이 없잖아요?”

북한 주최 여자 프로골프 겨울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무려 11오버파, 83타를 친 탓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강유리는 아버지 강준호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화풀이를 하는 중이었다. 종합 성적이 하위에 머물렀고 그로 인해 거성자동차그룹의 지원마저 끊긴 상태였으니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 직전이었을 것이다.

“골프경기에서 죽을 쒔든 풀을 쒔든 그게 네 탓이지 내 탓이냐? 하지만 주눅들 필요없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도 있잖니?”

“그런 엉터리 비유가 어디 있어요? 이번 경기에서 풀 쑨 것이 작전상 일부러 한 짓이라면 얼마나 좋아? 아무 대안도 없이 찌그러졌으니 문제지요.”

“어허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대도. 이번 골프대회 성적과 우리의 원래 목표 달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넌 벌써 잊은 게냐? 우리의 원래 목표가 뭐야?”

“그야 유민 회장에게 빼앗긴 우리 재산을 되찾아 오는 거지요.”

“그렇지? 그러기 위한 행동강령은 뭐고?”

“첫째, 어떻게 하든 유민 회장을 이혼시켜서 재산을 반 토막 내는 것. 둘째는 무슨 수를 써서든지 그 토막 난 재산을 가로채는 것….”

“그렇지. 잘 알고 있구나. 그까짓 거성자동차그룹의 골프 후원금 따위는 애초부터 우리 목표에 없던 거라고.”

“그래도 속상하잖아요.”

“속상해할 필요 없다니까? 오히려 일이 더 잘 풀리고 있어. 이참에 네가 나서서 유민 회장의 아들 녀석을 후리기만 하면 끝나는 거야. 유민그룹이 통째로 굴러 들어오게 되어 있다고. 알아 듣겠어?”

부녀간의 전화통화는 이렇게 계속되었다. 남이 듣기엔 보통 사기꾼의 대화 같았지만 강준호와 강유리는 입 속의 침이 마를 정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나누는 대화였다. 그러니 전화통화가 짧게 끝날 리 없었다. 전화기가 뜨거워져서 뺨에 다리미를 대고 있는 것이란 착각에 빠져 들 정도였다.

“안 되겠다. 너 당장 이리로 와라.”

“왜요? 귀찮은데…전화통화로 끝내면 안돼요?”

“이것아! 내가 유민그룹의 부사장이 될 수도 있는 절호의 찬스란 말이야. 구구절절한 이야기꺼리가 많아. 당장 쫓아 와.”

“그게 정말예요? 아빠가 유민그룹의 부사장이 돼요? 어떻게?”

“모두 네 하기에 달렸어. 아무렴!”

유민그룹의 황태자에게 딸을 내다파는 것만 같아서인지 강준호는 차마 전화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그의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강유리야말로 언제부터인지 유호성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는데…. 따지고 보면 북한 주최 여자 프로골프 겨울대회에서 최하위에 머무는 성적을 거둔 것도 의당히 곁에서 지켜봐 주어야만 할 유호성이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남자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다른 어떤 년에게 홀렸을 거야. 분명해…누굴까? 나도 모르는 새에 기쁨조가 찾아왔던 건 아닐까? 기쁨조는 인물이 출중하다던데….’

이런 생각에 빠져있었으니 공이 제대로 맞을 리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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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