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KBS 주말극 ‘내 딸 서영이’는 가족극으로서는 몇 가지 미덕이 있다. 가족극은 보통 표독스러운 시어머니를 내세우는 방식 등으로 결혼 문제나 고부관계를 통해 자극과 긴장을 만들어내곤 했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는 악역이나 독한 캐릭터가 있는 기존 가족극과는 달리, 악역이 한 명도 없다.
기존 가족극에서 별로 다루지 않던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극을 풀어나가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이 점은 주로 고부관계를 다루던 기존 가족극과 차별된다. 어차피 가족은 핏줄만이 아닌 사랑으로 엮여 있다는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고 있지만 무엇을 통해서 보여주느냐 하는 점에서 새롭다는 얘기다.
자존감이 강한 서영(이보영 분)은 무능하고 못난 아버지 이삼재(천호진 분) 밑에서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도 아르바이트로 집안 빚을 갚고, 아버지가 없다고 말하며 엄친아 우재(이상윤 분)와 결혼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의 시댁에서 ‘시한부’ 행복을 맛보며 생활하던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아버지가 있음을 알게 됐다.
이렇게 스토리가 흘러가는 동안 삼재는 자신을 부정한 딸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사위 회사에 잠깐 취업해 있는 동안에도 혹시 딸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여기서 삼재는 아버지 이전에 한 남자로, 한 인간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보여주고 있다. 부모가 주로 자식의 연애ㆍ결혼ㆍ교육 등에 관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가족극의 한계를 돌파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식을 위한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적으로, 뒷받침을 해주기 힘든 이 땅의 아버지들은 이삼재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삼재 외에도,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아내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강기범(최정우 분)과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소모품으로 살다가 58세의 나이에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겠다고 나선 최민석(홍요섭 분) 등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아버지의 유형을 함께 보며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 아버지 모두 리얼리티를 갖추고 있어 공감할 수 있다. 일일극이나 주말가족극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이처럼 다양하고 깊이 있게 다룬 경우도 별로 없었다.
이 드라마에서 제공하는 남녀 멜로는 서영-우재가 중심이다. 우재는 사랑하는 서영과 결혼하기 위해 인생목표까지 수정하며 가업을 이어받아 달라는 아버지의 제의를 받아들였지만 거짓말을 한 서영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태도도 크게 달라졌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마무리 짓고 화해와 화합을 이끌어내느냐가 앞으로의 과제다.
서영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이지만 가엾은 아버지를 보듬어 안은 상우(박해진 분)는 사랑하는 미경(박정아 분)이 서영의 시누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를 숨긴 채 미경을 포기하고 자신을 짝사랑해온 호정(최윤영 분)과 결혼하려 한다. 이 과정이 그리 매끄럽지는 못하다. 통속적인 설정으로는 좋지만 구성의 디테일에서는 허점도 보이고 있다.
어머니는 일찍 죽고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성장한 두 자식 중 한 명은 변호사가 되고, 또 한 명은 종합병원 레지던트가 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경과 결혼할 수 없게 된 상우는 괴로워하며 사랑하지도 않는 부잣집 딸 호정에게 프러포즈하는 것도, 속물적으로 본다면 의사라 해도 가난한 남자로서는 행복한 고민이다.
‘내 딸 서영이’의 결말은 뻔하다. 그래서인지 제작진은 갈등을 유발시킨 캐릭터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봐 달라고 한다. 서영이가 아버지와, 또 시댁과의 상처와 문제들을 어떻게 보듬고 치유해 나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서영이 아버지를 부정하고 결혼했다는 설정은 아무리 돈이 많고 조건이 좋아도 상호이해와 소통이 안 되면 불행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시청자들이 가족과 얼마나 소통을 잘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것만으로 이 드라마는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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