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9회> 사랑을 위한 의식 (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큰돈을 쓰지 않으면서 어떻게 세계적인 골프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을까? 또한 어떻게 그들에게 골프채를 들게 할 수 있을까? 권도일은 막연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왕 예원희와의 사랑 놀음이 재벌2세에게까지 알려진 이상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굳이 LPGA와 같은 대규모 골프대회는 개최하지 않아도 됩니다. 북한의 서열 33위 당 간부 도형철은 다만… 회장님께서 북한의 골프 발전을 위해 약간이라도 지원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권도일은 더듬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재벌2세는,
“그건 북한의 고위급 당 간부 도형철의 생각이고요… 나는 권 전무의 생각이 어떤지를 알고 싶단 말입니다. 권 전무께서 예원희라는 그 여자에게 어떤 약속을 했는지가 궁금하다는 말예요.”
이렇게 다그치며 권도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테면 얼버무리지 말고 이실직고하라는 무언의 외침이었다.
“여자에 눈이 멀어 이룰 수 없는 약속을 남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권도일은 사건의 전말을 시시콜콜 밝히기로 작정했다. 생즉필사! 이럴 때 살아나려고 애쓰면 도리어 죽게 될 것이 뻔했다. 홀로 북한에 들어갔으니 두렵기도 했다는 것, 그 와중에 5개국 관통 랠리대회 개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것 같아 벅찰 지경이었다는 것, 그러다가 얼떨결에 예원희와 동침한 사실을 제6사단장에게 들켜 매춘사범으로 몰리게 되었다는 것… 이 모든 사실을 술술 밝히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들의 서열다툼에 휘말려든 셈이로군요, 어쨌든 매춘혐의를 뒤집어썼으니 교화소에 끌려가서 반성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협박당한 것이고요.”
“일이 그 지경으로 번졌으니 죄송할 뿐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5개국 관통 랠리대회를 북한 측에서 강력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매춘사범이란 올가미를 씌워가면서 목적을 이루려 했지만 사실 저희가 예견한 그대로였으니까요.”
“그렇군요, 예견했던 대로 자기네 영토를 통과시켜줄 테니 길을 깔아달라고 한 것뿐인데… 방법이 조금 거칠었군요, 그 와중에 권도일 전무의 체면만 잔뜩 구긴 셈이고요. 안 그렇습니까?”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니지요. 아직 들을 얘기가 남아 있습니다. 북한 미녀 예원희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약속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셔야지요. 그녀와의 약속이 곧 당 간부 도형철에게 한 약속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재벌2세의 질문은 집요했다. 하지만 그 집요함 때문에 오히려 권도일은 모든 사실을 밝혀야만 했고, 그 때문에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으니 아니러니할 뿐이었다.
“…… 북한의 골프선수였던 도형철은 제6사단장을 질투했습니다. 제6사단장이 골프를 깔아뭉개고 랠리대회를 추진하는 것도 못마땅했지요. 그는 사실 거성 회장님께 진심으로 부탁한 셈입니다. 평양에서 LPGA와 맞먹는 골프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존재를 과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요.”
“권 전무께서는… 그러겠노라고 하셨고요?”
“네.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른대로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은 국정원을 통해 그간 권 전무가 겪은 일과 예원희라는 여인의 신분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그녀는 도형철의 딸입니다. 결혼했던 전력이 있지만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요,”
재벌2세의 말에 너무 놀란 권도일은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야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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