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이종혁(38)은 원래 진중한 캐릭터 전문이다. 냉정한 악인 역할이 많았다. ‘추노’ ‘그린로즈’ ‘말죽거리 잔혹사’ 등만 봐도 그렇다. 최근 끝난 ‘신사의 품격’에서는 기존 캐릭터와 전혀 다른 바람둥이 이정록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정록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비중이 적어도 충분히 존재감을 발산했다. 연기자가 된 후 처음 찍었던 삼성화재 CF에서는 까불이 콘셉트로 나올 정도로 이제 가벼운 이미지도 어울린다.

“남성적이고 진중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풀어진 역할이었다. 그동안 코미디도 해봤는데 성적이 안 좋았던 적이 있었는데다 비중도 적어 확신이 서지 않은 면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반응이 좋아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극과 극 연기가 가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한 이종혁은 연극으로 시작했다. 어릴 때는 무대에 서는 게 좋았다. 연극을 하다보니 내공이 쌓였다. 극단 ‘학전’ 소속으로 잠깐 있다가 소속 없이 오디션으로 여기저기 작품에 출연했다. 소극장 장기공연은 그의 연기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이종혁은 “연극 ‘라이어’에서 이문식과 안내상 선배에게 많이 배웠다. 호흡 템포를 익혔다. 빠른 대사의 묘미를 알았다. 여기서는 느려지면 지루해진다. ‘신사의 품격에서도 정록은 말이 느리면 재미없다. 계속 빨리 해야 한다. 연극에서 박정자라는 대선배와 호흡을 맞추면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도 고민해봤다”면서 “드라마는 순간적으로 힘을 모아 임팩트 있게 찍어야 하지만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보면서 느낌을 살릴 수 있고 신(Scene)의 목적을 고민하는 게 다르다. 이런 연극의 속성이 드라마 연기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종혁은 가난한 연극배우 시절 만난 여성과 200만원 들고 결혼했다. 아내에게는 남자는 비전을 봐야 한다며 프러포즈했다. 그러니 스타는 포기하고 살았다. “스타는 잘 생기고 예쁠 때 얘기다. 서른 살이 넘어 데뷔하는 사람이 스타를 꿈꾸면 되겠는가. 고생하는 아내와 부부싸움을 많이 했지만, 그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열심히 했다.”

영화 ‘말죽거리잔혹사’(2004년)는 연극을 7년 동안 하다 처음으로 비중 있는 캐릭터를 맡은 영화였다. 배역이 맞고 안 맞고 보다는 자신의 존재 알리기가 더 중요했다. 잘 하면 비중을 더 높이고 돋보일 수 있는 조연이었다. 맡은 작품에 대한 반응도 좋고 액션도 좋아 악역도 들어왔다. 악역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했다. 롤모델을 두고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개발해냈다.

“너무 악역에만 열중하면 안 된다. ‘추노’의 무사 황철웅은 냉정한 사람인데 펑펑 운다. 강렬한 눈빛이지만 약간은 열어놓는 그런 느낌이다.”

이종혁은 작품마다 잘해서 인정을 받아야 다음 작품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래서 캐릭터의 표현법과 캐릭터의 의미를 연구한다.

“‘신사의 품격’에서 웃기고 철없는 종록은 잘못하면 욕먹을 수 있는 캐릭터다. 작가가 귀엽게 만들어주었다. 나도 종록의 단점을 희석시켜 연기했다. 철없는 듯 보이지만 아내를 사랑한다. 뺀질뺀질 하지만 바보 같을 때도 있고 귀여운 구석도 있다. 그런 게 없으면 아내가 계속 의심하는 남편이고 친구들로부터는 계속 욕먹는 캐릭터여서 사랑을 받을 수 없다.” 그는 실제 3살 연상이기도 한 상대역인 김정란에 대해 “자기 스타일이 확고히 있고, 호흡을 맞출 필요가 없는 베테랑이다”고 추켜세웠다.

이종혁은 인간관계가 원만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술도 잘 먹는다. 장동건 김수로와 함께하는 연예인 야구단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운동을 하고 회포를 푼다. 김수로, 이필모, 임형준, 정성화는 대학의 같은 과 동기다.

이종혁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싶냐는 질문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는 건 없다”고 말했다. “신사의 품격 같은 밝고 가벼운 캐릭터를 하고 싶었는데 무거운 배역만 계속 들어왔다. 이제는 신사의 품격에서 가벼운 캐릭터를 했으니까 진지한 캐릭터를 해야 할지 고민이다.” 무거움, 진지함과 가벼움, 유쾌함을 둘 다 소화할 수 있는 배우의 행복한 고민이다./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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