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3회> 모든 길은 하나로! 22
인생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우선 아침 일찍 일어나면서부터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아직 졸음이 달려 있는 눈을 비비며 동네 뒷산부터 뛰기 시작한다. 집 근처에 마땅한 산이 없다면 하천을 따라 이어진 길이라도 무작정 뛰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엔 외국어 회화를 하든지, 단전호흡을 배우든지, 게릴라콘서트를 찾아가 연주에 심취하기도 한다.
저녁, 퇴근 후에도 술집에서 죽치는 일은 가급적 삼간다. 기껏 한두 잔의 술에 만족하고 남은 시간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을 위해 보내기로 한다. 단 1분, 1초라도 쓸데없는 일에 매달려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다. 왜냐고? 소중한 인생이니까! 허투루 낭비해도 좋을 만큼 인생이 길지는 않을 테니까!
“자, 어서요. 어서 비누칠부터 해요.”
권도일의 하복부를 더듬던 그녀는 용틀임하는 그의 지겟작대기에 샤워기의 물줄기를 뿜으며 독촉하기 시작했다. 왜냐고? 상열지사 이외의 버려지는 시간이 아깝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모든 어려움을 헤치고 둘이 함께 소나기 목욕실에 들어온 이상 1분, 1초라도 쓸데없는 일에 매달려 행복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이거 원…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하지만 권도일은 그녀에게 불처럼 다가설 수는 없었다. 왜냐고? 북한 땅이기 때문에! 아무리 양처럼 온순해 뵈는 그녀일지언정, 북한 여자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악랄한 빨갱이 집단이라고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이 마당에 쑥스럽긴 뭐가 쑥스러워요?”
“서론도 없이 본론으로 진입하는 게 영 어색하지요.”
“서론? 오마나 망측해라. 나도 서양의 야한 인터넷에서 서론질 하는 걸 봤어요. 그거야말로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쑥스럽더군요.”
“서론질? 그게 뭐지요?”
“본론 들어가기 전에 남녀 둘이 엉켜서 설치는 거 말예요. 서양 남자 녀석이 여자를 눕혀놓고 지체 없이 섬멸적인 반 타격을 가하는 꼴이 가관이지 뭐예요?”
예원희는 분명 서울에 사는 중산층 젊은 여성의 말투를 쓰고 있었지만 그녀가 선별하여 사용하는 단어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섬멸적인 반 타격이라니….
“그렇지요, 그들의 서론질을 보면… 인도주의적 상황에서 여자의 인권을 상당히 무시하는 처사 아닐까요?”
“글세… 그렇게 봐야 하나요?”
“그럼요! 예민한 여성에게 잔뜩 불질을 해대놓고 농락하면서 즐기는 것 같단 말입니다. 그건 여성의 자주권을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해요.”
“불질? 자주권 무시?”
“여성의 몸 중에서 최대 열점지역을 지체 없이 까발리다가, 여성의 자주권이 행사되어야 마땅한 지역에 서툰 불질을 해대놓고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망설임도 없이 권도일의 몸에 비누칠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하! 그녀의 말을 듣다 보니 여성의 자주권이 무얼 뜻하는지 알 만도 했다. 더구나 그녀가 비누칠을 하기 위해 용틀임을 마친 지겟작대기를 건드릴 때마다 그는 짜릿짜릿 전기에 감전되는 느낌에 이를 악물어야만 했는데… ‘열점지역’ 운운하던 그녀의 말귀를 이제야 알아들을 수 있을 만했다.
문득 북한 소식을 전해주던 텔레비전 뉴스 한 토막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북한군 무도 방어대를 시찰하던 날 행한 연설에서 연평도 쪽으로 향한 앞바다를 바라보며 ‘이곳은 조선반도의 최대 열점수역’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열점수역이나 열점지역이나…이를테면 성감대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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