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인가? 포르노인가? E.L. 제임스의 문제의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원제: ‘Fifty Shades of Grey·사진)가 국내 번역ㆍ출간된 가운데 10일 만에 초판 3만부가 팔리고 중쇄를 거듭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내가 바람났다’며 남편들이 책을 불태우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 이 외설 소설의 국내 첫 반응은 뜨거운 셈이다. 이는 이미 영미권에서 300만부 이상 팔린 입소문 효과 덕이 크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여성층의 압도적인 구매열 속에 출판계 주 독자층인 30대 여성(34.6%)에 이어 40대(18.4%) 여성이 주 독자층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외설을 바라보는 여성의 사회적 인식이 변한 것인가.
소설 쪽에서 보자면, ‘그레이…’의 인기는 시대와 잘 맞아떨어진 운 좋은 책이다. 국내 출판계에서 홀대를 받아온 외설 소설들과 위상에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동안 많은 소설들이 외설이란 주홍글씨를 달고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던 데 비해 신데렐라 로맨스의 외피를 입은 이 포르노 소설은 당당히 독자들의 시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추리ㆍ범죄소설이 중심을 이루는 장르소설은 애초 고상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노골적인 성, 추리, 범죄, 판타지 등 장르소설은 싸구려 갱지로 만든 펄프(pulp) 잡지에나 실렸다. 60, 70년대 대유행한 ‘선데이서울’이나 50년대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미국의 펄프 매거진, 펄프 픽션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런 B급 소설의 돌연한 귀환은 사회적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경계의 무화, 여성의 부상, 하류문화의 만연, 마이너의 조명 등 시대정신과 맞물려 있다. 소설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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