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8회> 모든 길은 하나로! (1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아무래도 여름은 사랑의 계절인 모양이다. 태양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데 어찌해서 사람들의 마음은 저마다 헛헛해져있을까? 모두들 속이 빈 필부였으니… 뜨거운 열기에 껍데기만 달아올라 중국호떡처럼 실속 없이 부풀어 오르기만 한 것일까?

돈이 떨어져 마음마저 헛헛해진 신희영은 게리플레이어 골프장의 물침대만한 그린 위에서 강준호와 사랑을 나누는 중이었고, 강유리의 더블플레이에 정신이 아득해진 유민 회장은 레전드 골프장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화풀이 삼아 현성애의 허리를 부여안고 사랑을 동정 받는 중이었다.

그들 두 쌍은 어쨌거나 아름다웠다. 허영에 눈이 멀었든 복수에 이를 갈았든, 나름대로 순수함을 품고 있었으므로. 문제는 권도일이었다. 남남북녀로서의 만남을 성사시켜주겠다는 도형철의 꼬임에 홀랑 넘어가서 만나게 된 북한의 활동사진 작가 예원희가… 아, 너무도 예쁘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말씀은 안 하시고 헉헉! 대기만 하십네까?”

말끝마다 인민공화국 ‘꼴푸 선수’ 임을 내세우는 도형철이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허허, 우리 예원희 씨… 예쁘지요? 이 처자 앞에서는 모든 사내들이 숨을 제대로 못 쉬고 헉헉댄단 말입네다. 지금 권도일 선생처럼 말이외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닐까. 도형철의 말이 백번 옳았다. 권도일이 말을 더듬거릴 정도로 그녀의 미모는 뛰어났다. 더구나… 통속적인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목소리는 옥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소리와도 같았고, 살포시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맑았으나 눈가에는 왠지 이슬이 번져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니긴 뭐가 아닙네까? 벌써 연정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지 않소?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소이다.”

“쑥스럽습니다. 그건 그렇고… 예원희 씨가 활동사진 작가라고 하셨나요?”

권도일은 에둘러 도형철에게 그녀의 직업을 물었다. 왠지 온 몸의 맥이 빠져나가서 그녀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조차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시사철 금강산의 절경을 보러오는 외국 귀빈들의 모습… 그걸 멋지게 찍어 영화로 만드는 전문 사진가 선생이란 말이오.”

“그럼 영화감독?”

“얼마 전까지 통일신보 사진기자를 하다가 요즘엔 외국손님들의 활동내용을 전담해서 찍고 있습네다. 조선작가동맹에 가입되어 있는 작가선생이기도 합네다. 직접 찍은 금강산 사진이 무역일꾼들에게 비싸게 팔린 적도 있지요.”

“아, 그렇군요.”

“지금 우리 조선에서는 사진방면으로 제일 유명하오. 사실적으로 풍경그림을 그리는 강정호 선생, 수묵담채화로 유명한 석례진 선생만큼이나 유명합네다.”

도형철은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그녀는 오히려 조용히 웃고만 있었다. 소리 없는 외침이 더욱 크다고 했던가? 그녀의 잔잔한 미소에 권도일은 그만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크하하! 내 이럴 줄 알았소. 내가 오늘 이 처자를 권도일 선생께 정식으로 소개하려는 이유가 있지요. 그게 뭔가 하면…”

그럼 그렇지. 아무리 배급체계로 이루어진 사회라 해도 서로 간에 공짜로 주고받는 장사가 있나? 미인 앞에서 넋을 잃은 채 얼빵하게 앉아있는 권도일에게 도형철은 슬슬 속내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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