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5회>모든 길은 하나로! (4)
북한 땅을 밟은 권도일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 그가 바로 당 서열 32위에 오른 북한 공병 제6사단장이었다. 그는 어떤 경로를 통해 위원장의 명령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남쪽에서 온 귀빈을 단독 접대하는 중이었다.
북한의 골프선수 출신으로서 당 서열 33위 간부인 도형철도 공식적으로는 권도일을 만나는 자리에 배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6사단장의 도우미에 불과한 셈이었다. 6사단장이 그를 데려온 까닭은? 더도 덜도 아닌 체면치레용이었다.
“도형철 동무는 골프선수 시절에 외국을 자주 들락거리지 않았소? 본 것이 많을 거란 말이외다. 바로 동무의 그 점을 높이 샀습네다.”
“많이 보았지요, 사단장 동무. 사실… 영어도 몇 마디쯤은 할 줄 압네다. 출세하려면 동무도 영어를 은근스리 배워두는 것이 좋을 겁네다.”
“그러게 말이오. 요즘은 러시아어, 중국어만으로는 뒤가 딸려. 남한의 걸 그룹 노래가사를 따라 할라 해도 영어가 까슬거리지 않소?”
6사단장은 속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누며 친밀감을 과시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웃음이 끝난 뒤에는 언제 그랬는가 싶게 한 끗발 높은 당 간부로서의 포스가 입가에 번지곤 했다.
마침 그때, 보안요원의 감시를 받으며 권도일이 접견장으로 들어섰다. 북한 측으로서는 공식 인원만 해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석하고 있었지만 남한 측으로는 달랑 권도일 혼자였다.
“열렬히 환영합네다, 경주차의 영웅, 권도일 선생.”
6사단장이 축도하듯 양 팔을 높이 쳐들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환영인사는 요란하기 짝이 없었다. 곧이어 어여쁜 처자들이 술잔에 들쭉술을 가득 담아 들고 나왔다. 접견장이라기보다는 회식장소인 셈이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서 구했는지…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권도일이 몰던 1974년 산 치타의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불에 끄슬려 형편없이 돼버린 차를 몰고 달려서 남조선의 본때를 보여주셨으니… 같은 동포로서 어찌 아니 기쁘겠소?”
마치 포디엄에라도 함께 오른 것처럼 도형철이 팔을 벌려 그를 가볍게 안았다. 허그! 이를 테면 골프선수 시절, 외국물 좀 먹었다는 티를 내보인 셈이었다.
“그래도 8기통에 6000㏄, 500마력을 자랑하는 거성의 튜닝 카지요. 거성그룹 회장님의 젊은 시절 애환이 서린 차이기도 합니다.”
“거성그룹? 역시 권도일 선생은 남달라요. 에둘러 가는 법 없이 즉답을 원하시는구먼. 좋습네다, 거성그룹… 우리는 거성그룹의 투자를 원하고 있습네다.”
권도일은 첫 일정부터 담판을 지어야 할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불안하기만 했다. 근래의 행적을 돌이켜보더라도 개인 자격으로서는 처리하기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이스라엘로 날아가 N-Dos단과 협상을 벌이질 않나, 실종된 제임스 리 박사와 조우하질 않나….
이번에는 어쩌면 북한 최고의 권력자인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까지 느끼곤 했으니 자못 긴장될 뿐이었다.
“거성그룹에서 투자를 하라고요?”
“그렇소. 거성그룹에서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달란 부탁입네다. 우선 신의주에서 판문점까지 12차로 고속도로를 깔아야 합네다. 그 조건으로 5개국을 관통하는 경주차 대회를 허락하고, 권도일 선생이 모는 경주차가 그 도로를 당당히 통과할 수 있도록 검토해 보갔습네다.”
이미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하달된 각본에 따르는 것인가? 제6사단장은 거침없이 이렇게 말하더니 잔을 들어 들쭉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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