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열 SK㈜ 부회장

“기업, 사회, 국가를 일류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

인재 사랑이 남달랐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이를 위해 선대회장은 19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세우면서 1972년 재단의 재원 조달을 위해 서해개발(현 SK임업)을 설립했다. 인재와 숲에 대한 그의 사랑이 남달랐다. 재단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했던 김재열<사진> SK(주) 부회장은 “산에 나무를 심어 수십년 뒤 고급 목재로 자라면 이를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이라며 “SK임업과 재단은 쌍둥이 같은 관계”라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재단 설립 이후 사반세기 넘게 선대회장과 인연을 맺었던 선대회장의 벗 중 한 사람이다.

선대회장의 재단 설립은 그의 어려웠던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에서 기인한다. 전후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이던 시절, 선대회장은 타지에서 고생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골프클럽에서 일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미국 같은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 재단 설립을 마음먹었다. 1975년 재단은 드디어 처음으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10명 내외의 장학생을 뽑아 미국에 보냈다.

선대회장의 학자 사랑은 애틋했다. 1970년대 오일 쇼크, 1990년대 후반 IMF 사태 때도 그는 “경제가 어렵다고 걱정하지 말아라”라며 “재단은 내가 끝까지 챙긴다”고 했다.

선대회장은 애초 대학원 중심의 대학 설립을 고민하다 대신 재단을 세우기로 하고, 나무를 심어 재단의 재원을 충당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나무를 키워 수익은 재단에 주고, 재단은 재원으로 다시 학생을 키우는 선순환 방식이었다.

평소 숲과 나무에 관심이 많았던 선대회장은 인재 육성과 라이프사이클이 비슷한 임업에 주목했다. 특히 고급 가구재로 사용되고 열매도 얻을 수 있어 미국에서 고부가가치 수목으로 주목받는 검은호두나무를 키우기로 했다. 30년간 나무를 연 1회 벌채, 수익을 재단에 투입하도록 했다. 30년 순환 벌채이기 때문에 나무 심을 곳이 많이 필요했다. 때문에 천안 광덕 지역 등 전국 산림 4300만㎡(약 1300만평)에 나무를 심었다.

선대회장은 재단에 SK 색채가 들어가는 것을 경계했다. 지금도 재단 건물과 홈페이지에는 SK 이름조차 찾을 수 없다. 김 부회장은 “선대회장은 ‘학자는 연구실에서 논문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며 재단이 키운 학자들이 SK에 오는 것을 막았다”며 “백년대계를 위한 재단인 만큼 재단 이름에서 그룹 이름을 뺀 것도 선대회장의 뜻”이라고 말했다.

<신상윤 기자> /ken@heraldm.com <사진=안훈 기자> /rosed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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