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의 ‘시련의 계절’
호암이 탄탄대로만 걸으며 현재의 삼성을 일군 것은 아니다. 피같은 회사를 국가에 헌납하는 등 정부 권력과 갈등에서 빚어진 수난사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도 삼성이 정치권과 정부에 대해 조심스럽고 신중한 입장을 내세우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과 정부의 갈등은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호암이 세운 한국비료는 호암이 직접 차관 도입을 위해 일본 등을 방문하는 등 10여년간 세 번의 도전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당시 농업국가이던 우리나라는 1년에 2억5000만달러 규모의 원조자금을 받고 있었고, 이 중 1억달러가량을 비료 수입에 쓰고 있었다. 이를 줄이고자 삼성이 세운 기업이 한국비료다.
한국비료는 정부의 묵인 아래 이뤄졌지만 고스란히 죄를 뒤집어쓴 ‘사카린 밀수사건’ 때문에 정부로 넘어간다.
삼성의 수난사는 비단 한국비료에서 그치지 않는다. 1980년 동양방송(TBC)을 하루 아침에 뺏겨버린 것도 호암에게는 큰 아픔이었다.
동양방송은 1964년, 중앙일보는 1965년 세워졌다. 훗날 호암은 호암자전에서 “올바른 정치를 권장하고 나쁜 정치를 못하도록 하며 정치보다 더 강한 힘으로 사회의 조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한 끝에 종합 매스컴의 창설을 결심했다”며 설립 배경을 밝힌 바 있다. 동양방송은 1960~70년대 TV 방송국 중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면서 다른 방송사를 압도했다. 그러나 12ㆍ12를 통해 집권한 신군부에도 TBC는 먹잇감이었다. 동양방송에 대한 호암의 애착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양방송 포기’를 결정한 뒤 눈물을 흘렸다는 소문이 방송계에서 나돌 정도였다. 이렇듯 호암은 적지 않은 수난을 겪었다. 그렇지만 잡초같은 근성으로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신상윤 기자> /ken@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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