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박원순의 ‘장외 개혁풍’이 정치권을 강타하면서 여야가 일제히 쇄신을 도모하는 가운데, 최근 한국정당정치 위기의 원인과 향후 개혁방향을 진단한 정치학자의 논문이 나와 눈길을 모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한국 정당정치 위기와 정당개혁 과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 정치의 최대 위기는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는 하는 본연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유발, 증폭시키고 있다”면서 6가지 위기의 양태를 적시했다.
▶반응성의 위기
김 교수는 먼저 이념적 정체성(ideological identification)의 위기를 들면서, 정당들이 추구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어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부합하고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반응성(responsiveness) 및 신뢰(trust)의 위기를 지적했다.
또 2010년 지방선거직후 실시된 한 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28.6%만이 ‘평소 가깝게 느끼며 자기 지역을 대변하는 정당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국민과 정당 간 일체감(party identification)도 미약하다는 점 역시 위기의 모습으로 진단했다.
그는 공천실패에 따른 충원(recruitment)의 위기도 꼬집었다. 2008년 총선후 한 여론조사결과 공천의 문제점으로 ▷‘계파 나눠먹기 공천’ 39.9% ▷‘돈 공천’ 20.6% ▷‘실력보다 연고에 따른 공천’ 19.9% ▷‘밀실 공천’ 15.3% ▷‘남성 치중 공천’ 4.4% 등으로 지적된 점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의 위기도 지적했다. 그는 김호기(연세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정당정치의 제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탈현대적 정치가 현대적 정치를 압도하는 지금의 상황이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바람은 희망 도전 나눔 미래 상징
이같은 위기속에서도 한국의 정당들은 갈등을 해소하기는 커녕 오히려 갈등을 주도했다고 김교수는 힐책했다. KBSㆍ동서리서치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갈등을 부추기는 집단이나 세력으로 ▷‘정당’(34.2%) ▷ ‘언론’(19.7%) ▷‘정부’(18.7%) ▷‘시민단체’(11.6%) 등 순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갈등의 원인으로 ▷‘정치권의 해결능력 부족’(47.4%) ▷‘집단 이기주의’(28.3%) ▷‘통합 리더십의 부재’(13.7%) ▷‘시민사회단체간의 갈등’(7.4%)의 순으로 조사됐다. 정당이 국민희망의 반대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김 교수는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 보수 대 진보의 이념적 대립에 대한 피로감,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 등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것이 안철수 현상”이라면서 안풍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희망, 도전, 나눔, 그리고 미래를 적시했다.
그는 정당 정치의 붕괴의 원인을 ‘서식환경’에서 찾았다.
▶청와대에 복속하는 입법부(여당)
형식적으론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입법부에 소속된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당은 의원내각제처럼 행정부를 무조건 지지하고 일부 의원은 장관직을 맡아 내각에서 일하기도 하며, 당정협의체라는 관행을 통해 야당을 정치과정에서 배제시키는 식의 ‘기형적’ 대통령제를 나쁜 서식환경의 첫번째로 꼽았다. 이런 환경속에서 상임위 기능이 마비되고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 입법부를 지배하려는 유혹에 빠지거나 집권여당은 대통령 눈치를 보면서 무력해지기 십상이며, 결국 여야간 타협보다는 극단적인 대립만이 존재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어 한국 국회가 정당정치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원외의 정당에 발목이 잡혀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한국 정당이 인물 중심과 지역주의 정당으로 고착화되고 당 대표 또는 소수 실력자들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개인화되고 중앙집권적인‘(personalized and centralized)’인 구조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한국정치가 ‘10무(無)’의 늪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권력 투쟁만 있고 정치는 없다. 형식적인 삼권 분립은 있지만 실질적인 견제와 균형은 없다. 정치 공학은 있지만 정치철학은 없다. 정치 리더는 있지만 정치 리더십은 없다. 선동은 있지만 책임은 없다. 선거는 있지만 승복은 없다. 파당은 있지만 정당은 없다. 인물(개인화된 권력)은 있지만 시스템(제도화된 권력 구조)은 없다. 허황된 담론은 있지만 정작 정책은 없다. 정치꾼(politician)은 있지만 참정치인(statesman)은 없다는 것이다.
▶여야 쇄신내용에 시큰둥
여야의 쇄신 움직임에 대해 아직 국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최근 리얼미터가 지난 3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이 박근혜 전 대표가 이끄는 비상대책위를 만들어 추진하고 있는 쇄신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50.7%)가 ‘적극적 쇄신을 기대한다’(33.3%)보다 훨씬 많았다. 20대(66.6%)와 30대(62.3%), 무당파(62.4%), 서울 거주자(60.1%)에서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대세였다.
시민통합당, 시민세력들과 통합해서 민주통합당으로 재창당 한 제1야당에 대해서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43.8%)는 응답이 ‘야권 통합 성공으로 기대가 크다’(38.0%)보다 많았다. 15일 완료된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결과 친노 인사가 1,2위를 차지하고 순수 시민사회 출신은 탈락해 “도로민주당”, “도로열린우리당”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권력자도 개혁대상
개혁 방향과 관련, 김 교수는 한나라당에 대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할 것을 충고했다.그동안 한국 보수는 자신의 이익만을 보수하려는 탐욕과 부패로 국민들로부터 버림 받았기 때문에 당 강령에서 무조건 보수를 삭제하기 보다는 새로운 보수의 비전과 정책을 토대로 왜 한나라당이 재집권해야 하는지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보수를 부정하는 것은 박정희를 부정하는 것이고, 박정희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박근혜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한나라당은 화합하고 세련되고 무게 있는 쇄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는 여야 모두에게 “인적쇄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뒤틀린 정당정치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계파정치가 더 이상 설 땅이 없게 해야 하며, 권력자는 항상 개혁의 주체이고 나머지는 개혁의 대상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바탕을 두지말고 권력자도 개혁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 될 수 있어야 설득력을 가질수 있다”고 강조했다.
<함영훈 선임기자> /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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