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3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8
“저 놈! 은빛 바디, 크롬을 바른 머플러!”
엔진조차 끈 채로 서 있던 권도일은 본능적으로 시동키부터 돌렸다. 내리막 8부 능선,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길 옆자락에 비켜 서 있던 그는 유호성의 재규어 XKR을 보자 온 몸에 전율이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내리막길임에도 불구하고 엑셀러레이터에 힘을 가했고, 그 바람에 1974년 산 치타는 흙먼지를 바퀴 뒤로 밀쳐내며 울컥 달려 나갔다. 거의 25도에 육박하는 경삿길을 거꾸로 내려박히듯 달려 나가는 치타의 기세에 흙더미가 옆으로 부서져 나갔고 차체는 좌우로, 혹은 거의 반 바퀴나 회전하는 슬립현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긴장해라! 일단 저 놈 앞을 가로막아야만 해. 앞질러야 한다고!”
재규어 XKR에 대책 없이 추월을 당한 권도일은 아예 반말로 김지선에게 명령했다. 드라이버로서 코-드라이버를 다그치는 최초의 일갈이었다. 그는 어느새 감각적인 야생동물로 변해버린 셈이었다. 살벌한 맹수의 세계… 랠리란 애초부터 그런 경기였다. 초원을 달리는 사자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는 보라매처럼 먹잇감을 향해 몸을 던지는 필사의 경주였다.
“재규어가 우릴 발견했나 봐요. 갑자기 속도를 높이잖아요? 치고 들어갈 틈을 주질 않으니 어쩌지요?”
김지선이 슬립현상에 대처하여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외쳤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온 몸을 차체가 회전하는 쪽으로 기울여 머신의 중심을 잡아주는 일밖에 없었다. 그녀가 몸을 기울일 때마다 뒷바퀴 쪽의 슬립이 안정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길의 모양을 읽어!”
권도일이 명령했고,
“에스에스, 더블유! 24도 하강!”
김지선이 능숙하게 내비게이션을 읽었다. 24도라면 거의 곤두박질치는 기분으로 내달아야만 할 것이다. 하물며 에스코스로 휘어지는 코너가 두 번, 곧바로 악마의 이빨이라 불리는 더블유자 형태의 곡선주로가 이어지는 험로였다.
“초반 에스에서 더블유로 직접 흐르는 각도는?”
“아! 불가능… 미친 짓이야, 그건!”
미친 짓… 권도일도 미친 짓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초반 에스라 함은 에스코스로 휘어지는 코너 초반을 일컫는 말이고, 더블유로 직접 흐르자는 말은 도로를 이탈하여 산등성이를 미끄러져 내려와 악마의 이빨이라 불리는 곡선주로로 차고 들어가자는 뜻이었다. 이를테면 길 없는 길… 거의 45도에 이르는 벼랑길을 곤두박질쳐서 내려가는 007 영화장면을 연출하자는 말 아니겠는가.
“스턴트맨이라고 여겨!”
“환장했어? 유호성보다 먼저 죽으려고?”
“저 놈보다 앞서 가지 못하면 죽일 기회마저 없어져.”
김지선은 차라리 눈을 감았다. 권도일이 핸들을 잡은 이상 미쳐 날뛰는 짓을 막을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리 예감하기도 했고 이미 각오한 일이기도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아득할 뿐이었다.
“아덴만의 영웅 석 선장은 총알을 여덟 발이나 맞고도 살아났어. 8부 능선에서 직하강한다고 해서 모든 머신이 뒤집어져 구른다는 법은 없다고. 또한 구른다고 해도 죽는다는 보장은 없어. 안 그래?”
“하긴 지난번 영암 F1에서도 머신이 열두 바퀴나 굴렀지만 선수는 멀쩡했지.”
그때 ‘간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던가? 치타의 앞바퀴가 휠리를 하듯 번쩍 들리더니 그대로 벼랑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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