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2회> 열망을 품은 도전 15
“강 프로님, 지금 앞바람이 불고 있어요. 그렇지요?”
“그렇군요. 앞바람이 초속 1m 정도로 불고 있는 것 같아요. 살랑살랑.”
“살랑살랑…. 그렇지만 촉촉한 바람이네요.”
다음날 아침, 드디어 누드 라운드를 감행하게 된 순간…, 신희영은 차마 눈을 뜬 채로 강준호를 마주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온몸의 감각은 어린아이 피부처럼 예민해진 상태였다. 단지 옷 한 겹을 벗었을 뿐인데 온몸의 감각이 펄펄 살아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중이었을 것이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살아오던 그동안에는 어째서 이런 감각을 느끼지 못했을까. 어째서 냄새는 코로 맡는 것이라고만 믿어왔을까? 어째서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라고만 알아왔을까?
“저 앞에 펼쳐진 누드비치의 바닷물 냄새가 피부로 느껴져요. 아니, 해초 냄새가 귀로 들리는 것만 같기도 해요.”
“그게 바로 문향(聞香)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증거예요. 문향…. 드디어 신 여사께서 향기를 귀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맞아요. 그런가 봐요.”
“나는 지금 파도 소리를 눈으로 바라보는 중입니다. 파도 소리가 이토록 그림처럼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렇다면 강 프로님은 관음(觀音)의 경지에 이르렀군요. 소리를 눈으로 보는 경지…. 옷 한 겹을 벗어던졌을 뿐인데 갑자기 도가 트인 느낌이에요.”
“그래요. 정말 멋진 순간이로군요.”
이제 막 아침이 밝아오는 중이었다. 알몸으로 골프를 쳐야 한다는 사실이 아직은 낯설고 불안하기만 했으므로, 아니 그보다도 아침 햇살에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낼 용기가 없었으므로 그녀는 미명의 어둠을 이용하여 티잉그라운드까지 걸어나왔던 것이다. 잠시 후에는 생전 처음 만나게 될 사람들과 팀을 이뤄 라운드를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오로지 프랑스인 젊은 부부라는 사실만 미리 전해들었을 뿐.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은 고성의 벽을 덮은 담쟁이덩굴처럼 신희영의 종아리를 타고 슬금슬금 기어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축축하면서도 서늘하게 느껴지는 감각. 그 바람은 그녀의 벗은 몸 위에서 회오리치듯 맴돌다가 억새가 흔들리는 소리를 내며 귓바퀴 뒤쪽으로 흘러나가곤 했다.
“신 여사의 몸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어요. 정말 아름답군요.”
강준호는 넋을 잃은 채 그녀의 자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방금 떠오른 신선한 태양빛을 받아 그녀의 나체는 황금동상처럼 빛나는 중이었다. 깨끗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을 타고 햇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가 싶다가도, 언뜻언뜻 드러나는 긴장된 목덜미에는 수줍음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그 목덜미에 눈길이 스치기만 해도 가슴이 저릿저릿해질 지경이었다는 말이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지요.”
맞는 말이었다. 누가 이 상황을 외설스럽다고 말할까?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을 타고 부서져 내리는 황금빛, 그리고 검은 그림자가 어울려 자아내는 음영만으로도 그녀는 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나이 환갑을 넘긴 할머니인들 어떠랴. 아직 탄력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젖가슴의 윤곽이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리는 목련과 다름없었다. 아! 누가 그 모습에서 동물적인 음심을 품을 수 있으랴.
“아이, 강 프로님! 빤히 쳐다보지 마세요.”
어느 시인이 말하길… 누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면 너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어 줄 수 있다고 했다. 강준호는 지금 그 구절을 되새기고 있었다. 라제니 골프장이 신희영을 불러주니 그녀는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한 떨기 꽃으로 피어나는 중이었다. 단지 옷 한 장을 벗어던졌을 뿐인데 강준호와 신희영은 화사하고 향기로운 모습으로 부활하는 중이었다. 이것이 바로 라제니 누드 골프장의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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