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2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37
하와이 해변 모래밭에 엉덩이 자국을 찍고 니브레이크를 만든 사건은 오히려 하와이 경찰관의 사과를 받는 것으로 끝날 수 있었다. 경찰관이 숙소까지 찾아온 이유는 과연 유한솜이 미성년자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미성년자를 야밤 해변에 눕혀놓고 수작을 벌였다면 치도곤을 맞을 일이었다. 하지만 확인 결과 그녀는 당당히 만20세를 넘긴 처자였으므로 쉽사리 상황 종료가 이루어졌다.
월야침침 야삼경에 밧줄을 타고 허공을 날아다닌 사건은 백광돌이 하와이 경찰관에게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어차피 수영 팬티만 입고 사방을 활보하는 바닷가의 특성상, 백광돌은 팬티라도 걸쳐 입었으니 아무런 죄가 될 수 없었다. 그나마 재빠른 동작으로 인해 화를 면한 셈이었다. 면으로 된 팬티를 입었든 스판텍스로 된 팬티를 입었든 팬티는 팬티였으므로.
“완강기가 걸려있은들 뭐합니까? 고장 난 것이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잖아요? 그래서 한 번 테스트 해본 것이라는데 왜 그렇게 말이 많아요?”
이 항변에 하와이 경찰관은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 만약 화재가 발생했을 때 고장 난 완강기가 걸려 있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경찰관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하지만 본격적인 문제는 경찰관이 돌아간 직후부터 새로 생겨나기 시작했으니 태풍 지나간 후에 지붕 날아가는 격이었다.
“한승우 실장님, 본인이 직접 해명해 보세요. 아직 철부지인 우리 한솜이 가슴을…아이고 남우세스러워라, 말이 안 나오네. 우리 한솜이 가슴을 만졌다고요? 그것도 한솜이를 눕혀놓고 말 타듯이 올라앉아서? 마구마구?”
신희영은 눈초리를 올려세우면서 다그쳤다. 하지만 캐묻는 의도는 전혀 달랐다. 속마음은 ‘네가 우리 한솜이를 농락했단 말이야?’가 아니라 ‘네가 나를 버리고 한솜이와 놀아났단 말이야?’라고 해석해야 옳았다.
하지만 한승우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칫하면 물에 빠져 큰일이라도 날 뻔한 것을 억지로 살려냈더니 돈 보따리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는 그녀가 미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심전심, 정염에 타는 눈빛으로 다그치는 신희영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면서 그는 쓴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그런가 하면 건넌방에서는 강준호가 신랄하게 그의 딸 유리를 다그치는 중이었다. 공식적으로 둘 사이가 부녀지간임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므로 강준호는 남이 들을세라 속삭이듯 다그치는 중이었지만 그의 두 눈에서는 피눈물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기색이었다.
“너 혹시 백광돌…그 놈과 사고친 거 아니냐? 진도가 어디까지 나간 거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신희영이 너를 얼마나 신임하는 줄 알면서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해? 네 목표는 신희영의 아들, 유호성이라고! 재벌 아들을 낚아서 후려내야 우리가 빼앗겼던 돈을 되찾아 올 거 아니냐고?”
하지만 유리는 묵묵부답이었다. 강준호도 어쩔 재간이 없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었으니 더 이상 다그치기에도 명분이 서질 않았다. 유리를 다그치다 말고 삐끗 열린 문틈으로 백광돌을 내다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아리송할 뿐이었다. 그는 태연자작하게 텔레비전 쇼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뱃속에 구렁이가 들어앉은 놈이라 그 음흉한 속을 알아낼 수도 없었다. 어째서 저 녀석은 팬티만 입고 있었을까? 완강기를 타던 중 비싼 바지에 기름이 묻을 것 같아서 벗었다는 말이 사실일까?
“자, 자, 이제 다 잊어버립시다. 여러 사람이 몰려서 전지훈련 하다보면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나는 거예요. 공 과장! 내일 스케줄은 어떻게 되지요?”
먼저 기권한 사람은 성미 급한 신희영이었다. 심증도 아리송하고 물증도 없으니 더 이상 난도질해봐야 분위기만 가라앉을 뿐이란 걸 깨달은 셈이었다.
“공 과장은 술집에 갔는데요? 박 대리도 함께 갔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던 백광돌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는 왜 수선을 떨고 있냐는 표정이었다. 과연 능청맞기로는 선수급이었다. 어느새 바지는 꿰어 입었지만 아직 상체는 벌거벗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구릿빛으로 드러난 몸매가 돋보이기마저 했다. 하긴 이곳에서 상체를 벗은 남자는 열에 아홉이었으니…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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