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5회> 날개에 숨긴 칼 35

그랬던가? 지난번 술집 회동을 끝내고 굳이 2차를 나가겠다고 설치는 꼴이 너무 아니꼬워서 팬티바람에 브리핑을 받은 것이 마음속에 옹골지게 맺혀있었단 말인가? 권도일은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마저 푹 숙였다. 이토록 옹졸한 인물들과 얽히게 된 것이 한편으론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정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권도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 혁대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웬걸, 도종호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그를 말렸다.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아무런 재미가 없지. 돈을 빌려주면 적절한 이자를 받는 것이 관례 아닌가? 그러니 우리도 적절하게 이자를 얹어 받아야지.”

이렇게 에둘러 말한 도종호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송달민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는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금세 송달민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신이 났던지 그는 웃다가 지쳐 눈물을 질금질금 흘릴 정도였다.

“역시 상무님은 기획의 천재이십니다. 허허허!”

“천재는 무슨! 그 십분의 일인 백재쯤 되면 다행이지.”

“백재든 천재든 그만한 기획력을 지니다니 참 대단하십니다그려. 그럼 상무님 기획안대로 일을 추진해 보도록 하지요. 오늘은 선비답게 조용히 술이나 마시려고 했더니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마는군요.”

송달민은 자리 옆에 놓여있는 전화기를 통해 마담을 불렀고, 미처 수화기가 제자리로 내려지기도 전에 마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애교를 부리는 그녀의 귀를 잡아끌고 이번엔 송달민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어머, 너무들 짓궂으시다. 꼭 그래야 되는 거예요?”

“마담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 오랜만에 멋진 굿판이 벌어질 테니까, 허허허.”

그런 수작이 있고나서 1분이나 지났을까? 바지 혁대를 풀다 말고 엉거주춤 서있는 권도일의 앞으로 무려 일곱 명이나 되는 젊은 아가씨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아직 그 아가씨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권도일의 눈앞으로는 손바닥만이나 한 치마를 걸친 아가씨들이 사열을 하는 것처럼 늘어섰다. 미니스커트 아래로 병풍처럼 줄지어 펼쳐진 각선미! 저마다 굽 높은 구두를 신은 탓에 가뜩이나 늘씬한 다리가 더욱 길어 보일 뿐이었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 권도일 씨! 어디 이 아가씨들 앞에서 팬티만 입은 채로 빌어보게나. 배심원들의 결정에 따라서 자네 소원을 들어주든지 말든지 할 테니까.”

도종호와 송달민은 아가씨들의 중앙에 자리 잡은 채 도도한 자세를 취했다. 잠시 잠깐 사이에 술자리는 맹수를 풀어놓은 원형경기장으로 변해버린 셈이었다. 맹수들을 한자리에 풀어놓았으니 이제 권도일은 그들의 먹잇감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먹잇감 앞에서는 숨겼던 발톱을 드러내게 되는 법. 이제 잠시 후엔 그 발톱으로 권도일의 배를 가르고야 말 심사였다.

“왜? 빌겠다더니… 농담이었나?”

송달민은 잔에 찰랑대는 양주로 입술을 축여가며 빈정댔다. 그러나 이제야 분위기를 눈치챈 아가씨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차갑게 굳어있었다. 어찌 보면 그 아가씨들도 도종호, 송달민이라는 두 마리 맹수에게 사로잡힌 초식동물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도종호 상무님 그리고 송달민 선생님… 도와주십시오!”

잠시 머뭇거리던 권도일은 혁대를 풀어내고는 거침없이 바지를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무너지듯이 주저앉아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아야 했으므로 그는 깊이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 순간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좋아, 좋아!’ 하면서 껄껄 웃는 도종호와 송달민의 목소리는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권도일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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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