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날개에 숨긴 칼 (2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중ㆍ고등학생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앞둔 친구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밤새워 시험공부를 하고 철저한 복습과 함께 문제집 서너권을 풀어본 학생들은 은근히 어려운 시험문제가 출제되길 바라곤 했을 것이다. ‘반 평균이 고작 30점대인데 자기 혼자만 90점대를 마크할 때의 쾌감을 니들이 알아?’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오늘 라운드하게 될 ‘코올라우’ 골프 코스는 미국 내에서 제일 어려운 골프 코스로 정평이 나 있어요. 대략 10여년 전만 해도 골프장 정문에 ‘더 모스트 디피컬트 코스 인 유에스에이(The Modt Difficult Course in U.S.A)’라고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었단 말입니다. 어때요? 겁나지요?”

빅아일랜드를 출발한 프로펠러 비행기가 오아후 섬 호놀룰루 공항에 닿자마자 강준호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운을 떼었다. 곧 지옥 코스에 돌입하게 될 터이니 하느님께 기도나 올려 두라는 조롱이었다. 물론 타깃은 신희영이었다. 그녀가 똥오줌을 못 가리며 지옥 코스를 헤맬 때마다 자기는 멋진 샷을 날려서 그녀의 콧대를 왕창 눌러 놓을 심사였다. 평상시 본인의 실력이 어땠는지 그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ㆍ고등학생 시절을 좀 더 주의 깊게 되돌아본다면, 꼴찌에서 벌벌 기는 고문관들도 역시 시험 문제가 어렵게 출제되길 바라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왜냐고? 시험 문제가 엄청나게 어려워 사방에서 0점이 속출해야 그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 최대로 어려운 시험을 치른 결과, 반 평균이 10점대에 머문다면 그야말로 만고강산! 개나 소나 모두 0점 근처에서 빌빌 헤맬 판이니 그런 경사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래요. 최고로 어려운 골프장에서 한 번 멋지게 두드려 봅시다.”

신희영이 만만하다는 듯이 흔쾌히 대답했다. 고문관 노릇을 하던 학창 시절, 어렵게 출제된 시험을 치르던 날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 까닭이었다. 역시 그녀는 치마만 둘렀다 뿐이지, 장부와 다름없었다. 그저 공포에 질려 속옷에 오줌을 지리는 사람들은 한승우를 비롯해 공 과장, 박 대리 등등 초보 선수들뿐이었다. “공도 많이 잃어버리겠죠?”

한승우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렇게 묻자 강준호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대답했다.

“내 생각에 자네는 공을 80개 정도 준비해야 할 거야. 회장님은… 50개, 공 과장, 박 대리는 차라리 조약돌을 주워서 치는 게 좋을걸? 공 하나에 5000원꼴이면 통닭 한 마리 값인데 골프 친다고 통닭 수백마리를 날려버릴 셈인가?”

“어머나, 공을 80개나 준비해야 돼요? 그렇게 어려워?”

신희영은 놀란 나머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물었다.

“코올라우 골프장은 아마존 정글지대처럼 숲이 무성하고요. 게다가 비도 많아서 러프가 질퍽거린단 말입니다. 녹아내린 인절미처럼 질퍽한 곳에서 아이언을 휘둘러야 하는데 그게 보통 어렵겠어요?”

“코스 기복도 심한가요?”

“홀마다 티잉 그라운드와 페어웨이 사이에 절벽이나 계곡이 있어요. 좁아터진 페어웨이마다 기복이 무척 심한 데다가 대부분이 도그레그 홀입니다. 벙커들도 깊이가 20m를 훌쩍 넘고요….”

“그린 빠르기는 어때요?”

“엄청 빠르지요. 스리 펏, 포 펏이 기본입니다.”

“그런 델 뭐하려고 데려왔어요?”

“겸손함을 배우기 위해서지요. 골프공 앞에서 겸손함의 예의를 잃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배우자는 겁니다.”

앗싸! 강준호는 이렇게 말한 뒤에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역시 골프장에서는 골프 잘 치는 사람이 황제다. 골프 황제의 눈에 상대가 재벌가의 마나님이든, 어쩌든 간에 라운드에 앞서 주눅 든 모습이 애처롭기만 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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