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회> 죽음의 계곡 42
“이 차가 부가티 타입의 아틀란틱이야. 프랑스에서 1934년에 생산해낸 8기통 3300㏄ 엔진을 탑재했지. 무려 70여년 전에 만든 것인데도 이렇게 날렵하다니까?”
권도일이 노트북에 USB를 장착하자 갈색 모니터 위로 자동차 형상이 차례차례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부분 1930년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동안 만인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던 명차들, 이른바 클래식 카의 모습이 10초 주기로 떠오르곤 했다.
“어머, 저것 좀 봐요. 1940년대 메르세데스 걸윙 쿠페예요. 근엄하게 생겼네.”
그의 옆에 어깨를 마주대고 앉아 모니터를 보는 사람은 낙랑공주였다. 낙랑공주가 누구냐고? 5개국 관통 랠리에서 경쟁상대인 유호성을 돕는 미캐닉, 다름 아닌 현성애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권도일과 다정하게 마주앉아 어떻게 하면 유호성을 박살낼지에 대해 철저히 궁리 중이었다.
“겉모습만 근엄한 게 아니야. 당시 신개념 SOHC엔진으로 최고속도가 무려 시속 260㎞에 달했던 차라고. 하지만 이 차는 겨우 1400대만 생산되었어. 아마 지금 이 차를 구하려면 수십억원은 줘야 할걸?”
“어머, 멋져요. 이것 좀 봐. 다임러 DE36 쿠페! 이 차가 단 한 대만 생산되었다는 바로 그 차 아니에요?”
“모르겠어, 낭설이겠지… 어쨌든 이왕이면 이런 차를 타고 랠리에 출전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림의 떡이야. 거성자동차재벌 2세가 나에게 특별주문을 했거든?”
모니터로는 10초 간격으로 수많은 클래식 명차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886년에 발명한 세계 최초의 자동차로서 1기통 1.1마력의 엔진을 실은 다임러의 개솔린 자동차로부터 1930년에 생산된 캐딜락 V12, 귀족가문을 대변하던 영국의 오스틴 프린세스 리무진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곤 했다.
“특별주문?”
“그래요, 재벌 2세의 특별주문. 나는 이 화려한 외제 떡을 만져볼 수도 없어. 쉬어빠진 국산 떡으로 덤벼들어야만 해. 명령이나 다름없지.”
권도일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키보드를 누르자 이번에는 우리나라를 누비던 왕년의 자동차들이 역시 10초 간격으로 모니터에 드러나곤 했다. 올빼미 얼굴모습을 한 K360 3륜차로부터 1967년에 생산된 퍼블리카, 한때 우리의 국민차로 추앙받았던 포니, 그리고 추억 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코로나, 코티나를 비롯해서 맵시나, 브리사, 제미니, 포드20, 프레스토, 그라나다 등등 추억의 차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과연 이 많은 차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5개국 관통 랠리가 결코 장난은 아니잖아? 사막, 산악지대, 늪지대, 초원, 습지… 그 험난한 곳을 통과할 수 있을 만한 차가 이중에 있기나 할까?”
권도일은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아무래도 입상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당장 경쟁상대가 될 유민제련그룹의 유호성만 하더라도 검은 표범이라 일컬어지는 신형 마세라티를 몰고 출전할 것이 뻔한데 뭐가 어째? 출고된 지 30년이 넘은 국산 중고차를 몰고 출전하라고?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까봐. 재벌 2세의 뜻은 좋지만… 30년 넘은 차를 몰고 제대로 달릴 수 있겠어? 10리만 넘어서 굴러가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
그는 코가 석자나 빠져있었다. 아무래도 재벌 2세의 농간에 넘어간 것이라고 여기는 중인데 웬걸, 현성애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도일 씨, 내 나이가 몇이지요? 서른 살이 넘었지요?”
“그렇긴 하지만… 난데없이 무슨 얘길 하려는 거야?”
“여자도 서른 살이 넘어야 진정으로 몸이 뜨거워져요. 진짜 사랑을 알게 된다고요. 자동차도 마찬가지예요. 튜닝만 잘 하면 30년 넘은 차로도 진짜 뜨겁게 달릴 수 있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서른 살 넘은 여자의 뜨거움을 확인해 보세요.”
어리벙벙하게 앉아있는 권도일의 코앞에서 갑자기 현성애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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