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사회 드라마서도 대변 평범한 중산층 모습 사라져 그래도 성실·정의가 승리 희망 메시지만이 그나마 위안

“아빠가 더는 못하겠다. 나도 이 나이쯤 되면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칸 갖고 있다가 니들 물려줄 줄 알았어. 근데 서울에 쌔고 쌘 것이 아파트인데 내 거 하나가 없다. 30년간 니들 키운 빵집 처분하고 남은 건 고작 500. 내 30년 세월의 대가가 이 500만원이 전부다.”(SBS ‘청담동 앨리스’의 동네 빵집 주인)

허구의 TV 드라마에서조차 중산층은 설 땅을 잃었다. 평범하고 단란한 중산층을 요즘 TV 드라마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주로 가족물인 일일ㆍ주말 드라마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가정은 대부분 상류층 아니면 하류층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평범한 중산층은 가장의 실직, 생활전선에 뛰어든 주부, 몇 년째 무직상태인 자녀 등 하류층으로 전락해 있다. 마치 볼록거울처럼 과장돼 있지만, 우리 현실을 반영한 모습은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SBS ‘청담동 앨리스’에서 주인공 한세경(문근영)의 아버지 득기(정인기)는 유통재벌의 대형마트에 밀린 동네 빵집 사장으로 나온다. 그는 5억원짜리 아파트를 꼭지 때 2억5000만원의 대출을 받아 샀지만, 아파트는 반토막났고, 아파트 대출은 물론 자녀 학자금 대출까지 갚지 못해 큰 딸 세경의 월급을 담보로 사채 쓸 고민을 해야 하는 처량한 신세다.

그는 대형마트 사장에게 “라이트급이랑 헤비급이랑 싸우는 것도 경쟁입니까? 약육강식, 승자독식, 능력없는 놈들은 죽어라! 이 소리죠. 능력없으면 정말 다 죽어야 합니까?”라며 울분을 토한다.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세경은 3년 만에 원하던 의류회사에 임시직 디자이너로 간신히 채용됐지만 “안목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보고, 듣고, 느꼈느냐에 따라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회사 오너 딸인 상사의 말에 좌절한다.

3포 세대인 그의 남자친구는 “나아지긴 뭐가 나아져. 노력하면 할수록 절망만 더 커져. 수많은 아파트 중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하나도 없어. 아무리 벌어도 계속 마이너스야. 절대 플러스가 안된다고. 이런 내가 너랑 결혼을 해? 애를 낳아?”라고 자조섞인 이별을 통보하고 이민을 떠났다.

MBC ‘오자룡이 간다’에서 주인공 오자룡(이장우)의 가정도 순탄치 않다. 아버지 오만수(한진희)는 실직 사실을 숨기고 몰래 택시운전을 하고 있고, 어머니 고성실(김혜옥)은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친구 집에서 굴욕적인 가사도우미를 자처한다.

할머니 천금순(김영옥)도 스스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서지만 옥매트를 사면 취업시켜준다는 다단계업체에 속고 만다. 자룡은 임시직에 취업했던 회사에서 짤리자 동생과 함께 떡볶이장사를 위해 길거리로 나선다.

KBS2 ‘힘내요 미스터김’에서 네 자녀를 입양해 키우는 총각 김태평(김동완)의 직업 역시 남자 직업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가사도우미다.

번듯한 직업이 없는 주인공이 비루한 삶에서 벗어나는 선택지는 상류층 자제와의 혼사다. ‘청담동 앨리스’에선 세계적 명품브랜드의 한국지사장, ‘오자룡이 간다’에선 AT그룹의 귀한 막내딸, ‘힘내요 미스터김’에선 교사지만 힐링푸드 회사의 딸이 주인공이 올라타야 할 에스컬레이터다.

주인공이 소창업ㆍ자영업자 등 ‘자수성가’형으로 성공하는 스토리는 드라마에서 멸종됐다. 현실에선 공정한 경쟁,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구조라 느끼고 있는 시청자의 공감을 사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졸 여성이 조선소의 주인이 되는 ‘메이퀸’의 주인공 해주(한지혜)는 스스로 오너가 자제다. KBS2 ‘내 딸 서영이’에서 검사가 된 딸 서영(이보영)은 보증 빚을 가족에게 안기고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아버지 이삼재(천호진)의 존재를 속이고, 남편 우재(이상윤)를 잡아 재벌가 며느리로 수직상승했다.

종편 화제작 ‘무자식 상팔자’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등은 제목에서부터 자녀세대의 불운, 현실에서의 경제적 어려움이 풍긴다. 강남 사교육 실태를 리얼하게 다뤄 화제를 일으킨 지난해 드라마 ‘아내의 자격’ 속 강남 중산층은 결국 몰락하고 해체되는 결말을 맞았다. 치과의사, 검사, 학원장 등 고학력 전문직의 허위와 위선으로 불안하게 쌓아올린 가족은 불륜과 위법이 드러나며 모래성처럼 쓰러졌다.

TV 드라마의 끝은 늘 해피엔딩이거나 이를 기대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이다. 성실, 신의, 정의, 진정성 등 만고불편의 가치가 승리한다는 희망을 남긴다. 그 희망이 시청자에게 주는 판타지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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