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1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30
강유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상황이 이쯤 되면 철학적으로 일을 풀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막돼먹은 여자처럼 신발 신은 채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들춰낼 수는 없지 않은가.
“……”
아무 말 없이 꽃님이를 노려보기.
이를테면 철학적인 대치상황이었다. 꽃님이 역시 매일반이었다. 치마 속에 유호성이 알몸인 채로 찰싹 달라붙어 있으니 몸을 움직여 방어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니 상대의 처분에 맡기고 함께 노려보기만 할 뿐.
‘아이고… #*%*@%&*’
치마 속에 숨어있는 유호성이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그 순간,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소싯적에 읽었던 명작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으니… 참으로 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귄터그라스의 ‘양철북’이었던가? 유호성의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은 그 소설이 시작되는 첫 대목의 상황이었다.
폴란드 ‘카슈비아’족 농부의 딸인 ‘아나 콜리아이체크’는 밭 한 가운데에서 도망병을 치마폭에 숨겨준다. 마침 폴란드 전통복장인 넓은 폭의 네 겹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속에 충분히 도망병을 숨겨줄 수 있었던 것이다.
추적자들이 멀리 사라지고, 위기를 넘긴 도망병은 그러나… 치마 속에 자기를 숨겨주었던 ‘아나 콜리아이체크’를 겁탈하고야 만다. 일단 위기를 넘기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네 겹 치마폭을 통해 은은히 드러나는 속옷과 허벅지를 보게 되고… 참았던 욕정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용건이 끝났으면 방문 좀 닫아주세요.”
“윗도리를 벗고 계시네요. 주무시려던 참이었나요?”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무식한 짓 그만 하시고… 어서 돌아가세요.”
“알았어요. 미안해요.”
이런 경우에 한복치마는 참으로 유용하기 그지없었다. 한복치마는 가슴 위로부터 끈을 동여매게 되어 있으니 속옷을 입지 않았어도 맨 어깨만 드러날 뿐, 정사의 흔적을 온전히 숨길 수 있었다는 말이다.
강유리는 조용히 방문을 닫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치마 속에 유호성이 숨어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그녀가 조용히 물러나기로 작정한 까닭은 후사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장차 유민제련그룹의 비서실장으로 등극하기 위해 유호성에게 베푸는 최선의 배려였을 것이다. 일단 겁을 준 것만으로도 대성공이었으므로.
혹시 유호성 대감님을 만나거든 내가 찾더라고 전해주세요.”
강유리는 방문을 닫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찾는다고요? 내가 누군데요?”
“강 프로라고 하면 알 거예요.”
“강 프로? 운동선수예요? 프로 선수가 왜 이렇게 무식하담?”
“미안해요.”
사태는 이렇게 마무리 되는가 싶었다. 주위는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러나 치마 속에서 알몸으로 꽃님이에게 달라붙어있던 유호성이 폴란드의 도망병처럼 변해가더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참았던 욕정이 터져 나오는 모양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