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감추어진 승부 (55)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홍콩 무협의 고전으로 통하는 ‘유성, 호접, 검’이란 영화 서두에는 잊지 못할 명 자막이 흐른다. 기억해 보자면… ‘자객은 유성과 같다. 잠시 빛나고 사라질 뿐.’ 이었을 것이다. 지금 유호성을 쫓아 날고 있는 권도일은 유성과도 같은 자객이었다. 그는 사방천지 모래뿐인 사막 위에서 유성처럼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멀리 못 갔군.’

권도일은 입을 앙다물었다. 차창을 통해 점으로 보이던 물체는 금세 콩알처럼 커지더니 도토리, 밤, 사과, 수박 만해지도록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시속 1,200km란… 초속으로 바꾸어보면 333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동안에 잠실 종합운동장의 육상트랙을 거의 한 바퀴나 도는 셈이다.

여기에서 조금만 속도를 높이면 음속을 돌파하게 될 것이다. 음속 돌파 순간에 겪어야 할 충격을 완화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황금빛 로열 골드야말로 지상 30cm 위의 공기를 가르는 유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74년 치타의 뒤에 따라붙었음. 오버.”

권도일이 재벌2세에게 무선송신을 치자 즉시 명령이 하달되기 시작했다.

“치타 상황은?”

“심히 우려되는 상태임. 1974년 치타 후방 3미터에 요르단 국적 기를 단 블랙 이글스가 공격적으로 접근하고 있음. 아! 갑자기 ‘브로우’ 출현!”

‘브로우(brow)’란 랠리 중 노면의 기복이 심해 전면 상황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역을 페이스 노트에 표기하는 용어이다. 사막지역은 일반 도로보다 오히려 브로우에 자주 직면하게 된다. 일반 도로가 인위적으로 가공된 길이라면 사막은 날 것 그대로 펼쳐진, 야생의 길이기 때문이었다.

“브로우 지역을 통과했나? 그럼 계속 보고하라, 오버.”

“우려가 현실로 닥치고 있음. 요르단의 블랙 이글스가 출력을 높여 옆으로 치고나가더니… 저런, 저런!”

“무슨 일인가? 로열 골드!”

“블랙 이글스가 1974년 치타의 ‘인덕션 포드’에 정체불명의 가루를 분사하고 있음. 저런, 망할 자식!”

‘인덕션 포드’란 경주용 차량의 보네트 위쪽에 설치된 공기 흡입구를 일컫는다. 그 흡입구를 이용하여 온도가 낮은 외부 공기를 엔진으로 직접 공급해서 출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인데, 요르단 국적의 블랙 이글스에서 거기에 정체불명의 가루를 분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루의 용도가 무엇일까?

권도일은 너무 흥분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달리는 속도가 빨랐던지라 자칫하면 추돌할 것 같아 공중비행 장치를 재빨리 꺼버려야 했다. 그러자 갑자기 10cm를 하강하는 충격에 로열 골드의 네 바퀴가 모래 속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뒤로 모래먼지를 분사하기 시작했다.

‘치-치, 찌찌 또또…’

그 와중에 인터콤 설비 즉, 헬멧에 연결된 마이크와 스피커 세트가 옆으로 돌아가서 무선 통신이 중단된 모양이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금속성 소리는 궁금함을 참지 못한 재벌2세가 그새 모르스 부호를 타전하는 소리였다.

“테러인가? 무슨 가루야?”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 가루 아닐까요? 복어 독처럼…”

권도일은 이렇게 보고했다. 복어 독은 호흡중추를 마비시켜 상대를 죽이는 신경독이다. 그러나 상대가 사망해도 신체에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능히 비밀스런 테러 수단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