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9회> 감추어진 승부 43
중국 윈난성 서북부를 유유히 흐르는 진사강(金沙江) 중류, ‘청장고원’과 ‘운귀고원’에 인접한 곳에 언제나 만년설이 덮여 있는 열세 개의 설산이 늘어서 있다. 그 줄줄이 이어진 설산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마치 용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옥룡설산’이라고 불린다.
강준호를 비롯한 HY 훌푸드 직원들, 그리고 3류 감독은 여강(麗江)시로 접어들면서부터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눈앞에 길게 누워 있는 옥룡설산의 장엄함에 넋을 잃은 탓이기도 했지만 동양의 베니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굽이굽이 마을을 돌아나가는 물길 탓이기도 했다…라고 해야 좋겠지만….
정작 그들이 입을 다물지 못한 까닭은 예뻐도 너~무 예쁜 ‘나시(納西)족’ 아가씨들 때문이었다. 여기가 나시족 자치구였던가? 검은 바탕에 무지개 치장을 한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쓰고, 핏빛처럼 빨간 양산을 받쳐든 그 아가씨들과 옷깃만 스쳐도 그들은 오금이 저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거봐요. 여기로 오길 백번 잘했지요?”
“정말 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팀장님. 아직도 지구상에 이런 곳이 남아 있다니… 두 눈 빤히 뜨고 보면서도 믿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내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잖습니까. 저 아가씨들 참 예쁘지요? 그런데 함부로 대하면 큰일 나요. 나시족들이 모계중심이라 여자들 기가 세단 말입니다. 원래 티베트 북쪽에 살던 유목민의 후예거든요.”
“아, 그럼 말 타는 것도 좋아하겠네요.”
“말? 아, 그 말!”
에그, 한심하기도 해라. 이를테면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남녀상열지사뿐이었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옥룡설산 CC에서 벌이기로 한 골프라운드도 ‘기타 등등’에 속하는 허접한 잡사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벌건 대낮부터 상열지사를 치를 수는 없을 터. 그들은 일단 모든 욕심을 접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얼마나 산세가 높던지 전동차와 케이블카를 번갈아 갈아타야 했는데, 해발 3000미터에 다다르자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릿속에서는 지푸라기가 버석거리는 것 같고, 양쪽 귀에서는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으므로 가끔씩 휴대용 산소통에 코를 들이박아야만 했다.
“아이고, 이런 곳에서 어떻게 골프를 치란 말입니까?”
“감독님! 벌써부터 꼬리를 내리시면 어떡해요? 18홀 돈 뒤에 밤새워 19홀을 돌자던 그 패기는 어디로 갔습니까?”
“아이고, 그래도 이거야… 원.”
올려다보면 잔등이에 눈을 덮은 용처럼 설산이 길게 누워 있고, 굽어보면 푸른 삼나무 숲 아래로 검은 야크들이 무리 지어 있는… 원시적인 자연풍모가 일품이었다. 부챗살처럼 내리 펼쳐진 골짜기 틈으로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 그 사이를 따라 흐르는 청신한 바람을 타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하늘하늘 춤추는 이곳에서, 좋은 동반자들과 골프라운드를 즐기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지…라고 감탄해야 마땅했지만….
정작 그들은 월야침침 야삼경에 벌이게 될 나시족 아가씨들과의 스포츠섹스를 고산증세로 인해 망치게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할 따름이었다.
“자, 여기가 옥룡설산 골프장입니다. 유명한 곳이라고요. 5홀에서 이어지는 페어웨이는 길이가 무려 711야드, 세계에서 가장 긴 페어웨이랍니다.”
아마도 혼자 들떠 있는 사람은 강준호였을 것이다. 반생을 골프건달로 살아온 그였지만 히말라야 산맥과 이어진다는 이곳 옥룡설산에서 라운드를 하기는 그로서도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소문으로 듣기에 15홀 티잉그라운드는 해발고도가 무려 3200미터에 이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곳에서 난생처음으로 300야드 티샷을 날려보고 싶을 따름이었다.
강준호는 문득 프로골퍼가 된 느낌이었다. 기필코 오늘은 300야드 장타를 날리고, 언더스코어를 내고야 말 것이란 생각에 그는 바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