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6회> 감추어진 승부 90
1974년산 치타가 모래구덩이에 박혀 있든 말든, 드라이버 유호성과 코-드라이버 현성애가 구호 헬기에 실려 인근 티베트의 인민병원으로 후송되었다가 되돌아왔든 말든… 5개국 관통 랠리 대회에 출전한 다른 머신은 전속력으로 사막을 달리는 중이었다.
일종의 디치(ditch)라고 보아도 무방할까? 선두그룹을 형성한 머신들은 저마다 앞서 달리는 차의 좌우 바퀴자국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디치란, 원래 앞서 달린 차 때문에 생긴 타이어 자국을 말한다. 사막에서 깊은 디치를 뒤따르는 경우, 자칫하면 수렁으로 빠져드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무척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좌우로 밀려난 바퀴자국의 벽을 뱅크로 삼아 타고 달리게 되면 오히려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디치를 따라 전속력으로 앞차를 추격할 경우 가장 문제 되는 것은 역시 모래먼지다. 사막을 달리는 중에는 무려 30% 이상이 헛바퀴를 돌게 마련이고, 그때마다 모래먼지가 후면으로 분사될 수밖에 없는데… 그 모래먼지를 뚫고 달리는 일이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길로 돌아가는 편을 택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앞차의 코-드라이버가 오죽 잘 알아서 지름길을 선택했을까? 공연히 나서서 지름길을 찾느라 애쓰는 것보다 일정 기간 차라리 뒤를 밟는 편이 훨씬 현명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선두그룹 중에서도 가장 앞서 달리는 차는 붉은색 머신이었다. 꽁무니에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내달리는 헤드 부분으로 드러나는 붉은 색채가 태양빛을 받아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붉은색이라면? 보나 마나 이탈리아 선수들이었다.
“파시스트들이 뭔 일 내겠군.”
“그렇지만 우리 게르만 편대도 만만치 않을 거야.”
이렇게 주고받으며 붉은색 머신을 뒤쫓는 팀은 독일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실버 불릿(Silver Bullet)’, 즉 은빛 총알이란 별명으로 통하는 머신을 모는 중이었다. 하지만 햇빛을 받아 강렬하게 반사되어야 마땅할 은빛 총알은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채 마치 진흙 덩어리가 쏘아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이탈리아 선수들의 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래먼지가 극심하더라는 말이다.
대개 랠리에 참가하는 머신에는 나라마다 고유한 색이 칠해져 있다. F1 경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하지만, 국가의 명예를 걸고 자동차 경주를 벌인다는 의미에서 그 고유의 색에는 애국심이 녹아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탈리아가 붉은색, 프랑스는 ‘아쥐르’ 즉 푸른 하늘색을 고유 컬러로 선택했다. 영국은 녹색, 네덜란드는 오렌지색을, 벨기에는 노란색, 러시아는 검은색을 고유의 색으로 정했다. 원래 독일은 흰색으로 정했는데… 1930년대 중반에 은색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째서냐고? 물론 규정을 제1의 원칙으로 하는 F1 경기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1934년 독일의 벤츠 사는 그 해 F1 경기의 우승을 자신하며 강력한 머신 ‘벤츠 W25’를 생산했는데 그 머신의 총중량이 규정된 무게를 약간 넘어섰다. 겨우 F1 경기위원회에서 제한한 중량보다 2㎏을 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 어째야 할까? 종일 머리를 쥐어짜던 관계자들이 마지막 시도로 ‘벤츠 W25’에 칠해진 흰색 페인트를 벗겨 내자 겨우 규정된 중량 이하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페인트를 박박 벗겨 내니 머신의 색은 쇠붙이 본래의 색깔을 띠게 되었는데… 그걸 멀리서 보니 은색처럼 보이더라는 얘기.
“저 은색 독일 차 좀 봐. 총알처럼 빠르네!”
관중은 이렇게 떠들어댔고, 그 이후부터 독일 머신은 ‘은빛 총알’ 혹은 ‘은빛 화살’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는 후일담이 오늘까지 전해진다.
어쨌거나 빨간색 머신을 필두로 녹색, 파란색, 오렌지색, 노란색, 은색의 머신들이 각축을 벌이는 선두그룹으로부터 무려 500㎞나 훨씬 뒤처진 곳, 고비사막 언저리인 ‘바오터우’를 갓 지난 곳에서는 얼룩 강아지처럼 불에 그슬린 머신 한 대가 황급히 내달리고 있었다.
바로 유호성과 현성애가 모는 1974년산 치타였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채 앞차들이 남겨놓은 디치, 즉 바퀴자국을 따라 맹렬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