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코스피는 전장 대비 50.60포인트 내린 2,616.47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7원 오른 1,298.5원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29.91포인트(3.18%) 내린 909.76으로 거래를 마쳤다. [연합]
2일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코스피는 전장 대비 50.60포인트 내린 2,616.47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7원 오른 1,298.5원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29.91포인트(3.18%) 내린 909.76으로 거래를 마쳤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12년 만에 강등했다. 피치의 조치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놓고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경고로 갈리고 있다. 강등 소식 이후 2일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동반 하락했고 유럽 증시도 하락세로 출발했다. 신용등급 강등의 당사국으로 개장을 앞둔 미국의 뉴욕 증시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 데는 미국의 재정적자 증가와 재정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극한 대립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피치는 특히 미국 정치권이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대치하고, 늘 마지막이 되서야 해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회의 거버넌스(통치체제)가 벼랑 끝 대립을 일삼는 민주, 공화 양당 구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피치는 “미국은 20년 넘게 거버넌스 기준이 꾸준히 악화했다”며 “2025년 1월까지 부채 한도를 유예하기로 한 지난 6월의 초당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재정과 부채 문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5월 피치가 미국을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지정할 때도 같은 논리를 내걸었다.

불필요한 국가부도 사태 위험을 내걸고 '벼랑 끝 대치' 전술을 반복하는 정치권 행태를 보며 신용등급을 깎을 수 있다고 사전에 경고 메시지를 준 것이다.

앞서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릴 때도 국가부채 상한 증액에 대한 정치권 협상 난항 등이 주된 사유로 지목된 바 있다.

신용등급 하락의 더욱 근본적인 요인으로는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가 꼽힌다. 세수보다 재정지출이 더 빨리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피치도 이번 보고서에서 강등 요인으로 미국의 재정적자 증가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긴 분량을 할애했다.

경기 요인으로 연방정부의 세수는 약화했는데 각종 재정지출은 늘고 있는 점이 재정적자 확대 요인으로 꼽혔다.

작년 하반기 이후 국방 관련 지출이 늘어난 데다 올해 하반기부턴 인프라 투자 관련 각종 재정지출 계획이 대기 중인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이자 비용 증가다.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나랏빚을 크게 늘린 상황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려 이자 상환 부담이 이중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피치 분석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 재정적자 비중은 2022년 3.7%에서 올해 6.3%, 2024년 6.6%, 2025년 6.9%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증가에 따른 추가적인 재정 악화 우려도 이번 등급 강등에 주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피치는 이날 보고서에서 CBO 분석 결과를 인용, 2033년까지 메디케어(고령자 의료보험)와 사회보장 지출이 GDP의 1.5%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피치는 “향후 10년간 금리 상승과 부채 증가로 인해 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상승으로 재정개혁이 없는 한 고령층에 대한 지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미국은 2021년 현재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16.8%로 초고령사회에 다가서고 있다.

피치는 나아가 정부 정책 결정의 일관성과 신뢰성 저하로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약화할 경우 정부의 자금조달 유연성이 감소해 신용등급을 추가로 하향할 유인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정개혁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거버넌스 악화 경향을 반전시킬 경우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할 요인이 된다고 피치는 평가했다.

피치의 조치가 시장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피치가 일관성을 잃었다”며 “미국의 부채비율 급증은 일어나지 않았고 거버넌스 부문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거시경제도 작년보다 크게 개선됐다”며 피치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경제자문기업 RM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조 브뤼수에라스는 폴리티코에 “피치의 미 신용등급 강등은 미미한 사건이며 금융시장이나 경제를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미국 정부 신용을 AAA로 취급하는 한 세계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로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피치의 경고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투자자들은 자본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업과 정부의 위험도를 평가하기 위해 신용등급을 사용하는데, 대출자의 등급이 낮을수록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한다. 미 신용등급이 낮아졌다는 것은 미 국채를 더이상 ‘무위험 자산’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경고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날 피치 결정에 대해 “자의적이며 오래된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미국 국채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유동자산이며 미국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며 “피치의 결정은 미국인, 투자자 그리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백악관도 피치의 이번 결정에 강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 주요 경제권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회복세를 이끌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피치가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 것은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hanir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