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가게(장 퇼레 지음,성귀수 옮김, 열림원)=튀바슈는 대대로 자살용품을 팔아온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햇살 한 올 들지 않는 조그만 가게에는 죽음에 이르는데 도움을 주는 온갖 도구들이 망라돼 있다. 이 집안 사람들에게 절대 용납되지 않는 건 웃음이다. 손님들에게 친절한 표정을 지었다간 혼쭐이 난다. 엄마는 막내가 유치원에서 그려온 그림에 한바탕 화를 내는데, 그림에는 집의 창문과 문이 활짝 열려 있고 화사한 햇살과 푸른 하늘이 그려져 있었다. 이는 세상의 우울과 슬픔, 화를 먹고 사는 가문의 철학에 어긋나는 일이다. 지난 10월 작고한 프랑스의 타고난 이야기꾼 장 퇼레가 남긴 블랙코미디다. 이 상점은 어느 날 ‘삶의 기쁨’이라는 끔찍한 적과 마주하게 된다. 성병으로 죽으려는 손님을 위해 제작된 구멍 난 콘돔을 시험하다 원치 않게 태어난 막내아들 알랑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기 시작한 것. 날 때부터 웃는 얼굴에 옹알이에 웃음소리까지 터져 나오더니 밝고 명랑한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면서 가게가 흔들리게 된다. 자살가게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 미시마, 독극물 전문가이자 뛰어난 영업 수완을 발휘하는 어머니 뤼크레스, 악몽을 예술적 기질로 풀어내는 빈센트, 못생기고 쓸모없는 자신을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장녀 마릴린 등 죽음의 매혹에 사로잡힌 이들은 위기를 극복할까? 기발한 상상력으로 관념의 허를 찌르는 작가의 익살이 내내 웃음짓게 한다.
▶아낌없이 주는 팜유(김종화 지음, 곰시)=야자나무 열매에서 추출하는 팜유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식물성 기름으로 알려져 있다. 비누와 세제, 커피의 프림, 라면, 과자, 초콜릿, 화장품 까지 안 쓰이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여기에 친환경이라는 이유로 디젤 자동차 연료로도 쓰이고 있다. 한편으론 대규모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오랑우탄 서식지가 파괴되고 팜유 농장을 빨리 만들기 위해 산불을 내면서 유독성 연기로 호흡기 질환자가 생기고 온실가스를 배출시킨다는 주장이 나온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팜유 농장에 비료를 공급하는 김종화씨는 팜유에 대한 팩트체크에 나선다. 그에 따르면, 팜유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성비가 우수한 식용기름이다. 콩기름 1톤 생산하는데 2헥타르의 땅이 필요하고 카놀라유 1톤은 1.25헥타르의 토지가 필요하지만 팜유는 0.25헥타르면 된다. 팜유가 지닌 가장 큰 토지이용 효율이 오히려 무분별한 대규모 삼림 벌채를 대체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삼림 파괴도 말레이시아 정부가 새로운 경작지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으며, 살충제를 쓰는 대신 원숭이, 올빼미를 통한 친환경 해충 제거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팜유의 또 다른 논란 거리인 높은 포화지방산이라 건강에 안 좋다는 것도 사실과 달리 트랜스지방산이 전혀 없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전한다. 책은 팜유 나무의 일생에서부터 5천 년 전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발견된 질그릇 속 팜유 등 역사와 생산·유통과정 까지 일목요연하게 소개해 놓았다.
▶교만의 요새(마사 너스바움 지음,박선아 옮김, 민음사)=약자와 차별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반향을 일으켜온 세계적인 석학 마사 너스바움이 성희롱과 권력 남용의 문제를 짚었다. 법철학자 너스바움은 모든 차별과 폭력이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랜 시간 외면하고 은폐해온 성범죄의 기저에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권력을 비호해온 법과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투운동과 피해자들의 공개 수사 요청으로 이전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법적 보호 장치는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너스바움은 여성이 착취돼온 역사를 짚으며 성범죄는 여성의 대상화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여성을 객체로 전락시키고 지배할 수 있다는 남성 지배 권력의 믿음은 여성을 온전히 실재하는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는 교만에 빠지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너스바움은 강간 사건들이 판사들의 기준에 따라 재판된 과거 사례를 짚고 여전히 만연한 강간 문화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역사적 투쟁을 통해 거둔 페미니스트들의 성취도 평가한다. 즉 성관계에 대해 여성이 ‘싫다’고 말하는 것은 명확한 비동의를 의미한다는 것, 피해 여성의 성적 이력이 사건을 판결하는 데 색안경이 되지 않도록 한 것 등은 진일보로 기록된다. 너스바움은 나아가 가해자에 대한 집단적, 공개적인 창피 주기식 보복보다 중요한 것은 법적 소송을 통한 법적 처벌임을 강조한다. 그래야만 가해의 심각성을 드러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부당한 사용, 공소시효 문제, 증거의 사용 방식, 신고 장려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꼽았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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