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의 쇄국 정책은 부정적 평가로 일관한다. 빨리 개방해 자유 무역을 했다면 조선이 일본처럼 강해질 수 있었을 거란 주장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볼 때 개방 제안이 오히려 손해라면 일단 거부하는 게 상책이다. 일본에 강제 개항을 당하기 전까지 조선도 그랬다. 미국으로부터 강제 개항을 당한 일본은 운이 따랐다.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신경 쓸 겨를이 없는 틈을 타 힘을 키운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급하게 경제 정책을 편 부작용으로 경제공황을 겪게 되자 당장 조선을 공략해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조선 개항 1년 전, 일본은 한마디로 망하기 직전이었다.
1875년 일본은 이판사판격으로 강화도에 군함 한 척을 보내 개항을 요구했다. 조선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30 여명의 일본군에게 맥없이 무너졌다.
‘일본의 한국경제 침략사:쌀·금·돈의 붕괴’(한길사)는 조선 멸망의 원인을 화폐경제로 살핀 미시사로,일본의 전략적인 화폐침략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조선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조명한다.
저자인 김석원 미 털사대 경영학과 부교수는 경제학계 거목 고 김준보 교수의 손자로, 이 책은 저자가 조선말기 혼란기와 식민지시기의 경제를 다룬 조부의 논문을 쉽게 풀어 쓴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다.
책은 우리가 배워온 교과서적 역사에 여러 문제 제기를 한다. 흔히 개항 전 조선 경제 붕괴의 원흉으로 흥선대원군의 당백전 주조를 꼽고, 이미 안이 곪아 터졌다는 논리를 펴지만 저자는 좀 다른 입장이다. 개항 전후 일본이 조선 화폐경제를 무너트리면서 회복불가능에 빠졌다는 것이다.
당시 화폐가 조선 경제에서 차지한 비중은 3퍼센트에 불과했다. 상평통보보다 100배 가치가 있다는 구리 조각에 불과한 당백전의 발행으로 물가가 급격히 오르고 신용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영향은 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97퍼센트의 화폐역할을 한 것은 쌀과 면포였다. 당백전의 유통 또한 서울 경기 지방 중심으로 평안도 등에는 들어간 적도 없고 발행기간도 6개월에 불과했다. 당백전을 회수한 뒤엔 10년간 안정기를 지냈다.
대원군이 개혁 후 경복궁 중건에 돈을 낭비해 경제가 엉망이 됐다는 주장에도 이견을 단다. 경복궁 재건축은 집권 후 바로 시작해 세도가들의 뒷받침으로 이뤄졌으며 개항은 그 후 9년이 지난 시점으로 조선의 위기를 경복궁 탓으로 돌리기에는 간극이 크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대원군이 경복궁 등에 돈을 써버려서 위기가 왔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얘기다.
당백전을 주조했던 1866년부터 신미양요가 일어난 1871년까지 5년 이상 조선의 국방력은 제 기능을 했다. 조선군의 저항에 질린 미국이 한발 물러설 정도였다.
그런데 1875년 대원군이 물러난 지 1년 만에 일본 군인 30 여명을 태운 운요호가 강화에 오자 조선군은 도망치기 바빴다. 보급이 끊어진 지 여러 달이었다.
저자는 조선 말기 경제 몰락이 내부 실책 탓이기 보다 개항 이후 외국 상인들의 무역활동에 기인한다고 본다.개항 전 이미 밀무역이 성행, 손해 보는 거래를 수년 째 이어오다 개항 3년 만에 나라 창고가 비어버린 것이다.
개항 조약에 따라 엔화 사용이 허용되자 일본 정부는 엔화를 주고 금을 받아가려 했고 곡물이나 원료 등을 엔화로 대량 매입, 조선의 물건 가격이 오르는 등 조선 경제는 일본에 종속된다. 여기에 일본인들의 조선 돈 투기와 위조까지 판쳤다.
이런 일본의 화폐 침략으로 조선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경제는 무너지게 된다.책은 다양한 사료와 문헌을 제시, 조선말의 경제 실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일본의 한국경제 침략사/김석원 지음/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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