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정전·폐차 피해 잇따라

방전된 차량 길거리에 널려

거리마다 침수차로 교통체증

빗물 넘쳐나 신발 벗고 이동

출근 걱정에 재택·연차 선택도

서울과 수도권 및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9일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인근 대로변에 지난밤 내린 폭우로 인해 침수된 차량들이 방치되어 있다.[사진=임세준 기자]
서울과 수도권 및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9일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인근 대로변에 지난밤 내린 폭우로 인해 침수된 차량들이 방치되어 있다.[사진=임세준 기자]

“서울에서 부산 가는 날입니까. 다른 날이면 1시간 만에 가는 거리를 4시간 넘어 겨우겨우 들어왔습니다.”

지난 8일 오후 9시께 서울 용산구 숙대입구역 근방에서 421번 버스를 타고 서울 양재동 방향으로 귀가하던 직장인 김모(37) 씨는 한남동을 지나 신사역부터 심각한 교통 체증을 경험했다. ‘물폭탄’맞은 강남대로에서만 2시간 넘게 대기했다.

원래 택시를 타고 귀가할 계획이었지만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 대중교통을 선택했던 김씨는 “신사역에서 논현역까지 버스로 한 정거장인데, 40분이나 걸렸다”며 “참다 못한 승객들의 하차 요구가 빗발치자 버스 기사가 이를 들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버스가 서울 서초구 뱅뱅사거리를 지나 양재역사거리에 들어섰을 때도 김씨의 고난은 끊이지 않았다. 통상 신호체계에 맞춰 차들이 일사불란하게 이동했지만, 폭우로 인해 신호가 마비돼 거리에 차량들이 빽빽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가 탄 버스도 양재역사거리에서 양재시민의숲 방향으로 직진해야 했지만, 맞은편에서 좌회전을 하려는 차량들로 인해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수차례 실제 버스기사와 승용차 차주들 간 실랑이가 오가며 곳곳에서 욕설도 터져나왔다. 어떤 차주는 대뜸 직진하는 버스를 가로막고 “왜 운전을 이런 식으로 하냐”며 욕을 했고, 버스기사 역시 씩씩 거리며 응수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김씨는 다음날인 9일 오전 1시가 돼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오전)1시에 도착한 것도 중간에 내려서 걸어와서 가능했다”며 “순전히 차를 타고 갔으면 (오전)3시에나 도착했을 것”이라며 집에 못 들어올 뻔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8일 기습적인 폭우로 서울 지하철역 곳곳이 침수하는 등 피해가 연달아 발생했다. 맨홀은 범람해 거리에 허리춤 높이의 수심이 올라온 곳도 나타났으며, 거리 곳곳엔 교통체증이 일었다. 매서운 빗방울을 뚫고 겨우 귀가에 성공한 시민들은 정전이라는 또 다른 변수에 부딪쳐 간밤에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다. 특히 같은 날 저녁 물폭탄이 쏟아진 강남 지역의 피해가 심했다.

지난 8일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귀가하던 시민들에게도 폭우로 인해 귀갓길이 ‘고난길’이 됐다. 직장인 전모(27·여) 씨는 삼성역에서 강남역 인근 자택까지 귀가하는 과정에서 침수된 거리가 여럿 있어 수차례 길을 우회해야 했다.

전씨는 “거리에 맨홀들이 역류하는 것을 보고 조급한 마음에 강남역에서 내리자마자 신발도 벗고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거리에 소형 냉장고가 둥둥 떠다녔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폭우로 인한 피해는 그치지 않았다. 아파트단지 등 일부 주택가에서 정전과 단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씨는 “전날(8일) 오후 9시30분께 집에 도착하니 정전과 단수가 발생해 10시40분까지 불도 못 킨 채 있었다”며 “정전이 풀리고 난 뒤에도 아파트 경비 측에서 침수로 인해 지하 2층 차를 지상으로 빼 달라고 해서 자가용을 옮겨야 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의 경우 지난 8일 밤 29개 동 중 상가를 포함한 8개 동이 단수나 정전을 겪었다는 전언이다.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는 문모(26·여) 씨는 “대치역 출구에 나서자마자 거리가 물바다였다”며 “성인 허리 높이로 물이 차올라 시민들이 밖을 나서지 못하고 출구에 서 있었다”고 했다.

이튿날인 이날 오전 비 피해가 특히 심했던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는 폭우가 휩쓸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인근에 위치한 건물들 마다 1층 입구엔 모래 주머니와 비닐들이 흔히 보였다. 빗물이 건물 내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인도의 보도블록은 빗물로 파헤쳐져 모래가 드러나기도 했다.

강남역 인근 거리에는 폭우로 인해 길거리에 버려진 차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강남역 5번 출구에서 우성아파트로 들어서는 골목에는 검은색 그랜저 차량 1대와 하얀색 모닝 차량 한 대가 1차선 도로에 나란히 서 있었다. 폭우로 인해 차량들이 방전돼서다. 이들 차량을 운전하는 40대 A씨와 B씨는 이날 오전 보험사가 올 때까지 차 주변에서 대기하며 “회사 차량인데 어제 급작스러운 일을 당해서 당황스럽다”고 털어놨다.

지난 8일 기록적인 폭우로 이날 오전 재택을 하거나 연차를 쓰는 직장인도 있었다. 문씨의 경우 폭우로 출근이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회사 측에서 재택근무를 허용했다. 전씨 역시 출근이 어려운 직원들에 한해 재택이나 연차를 쓰도록 회사에서 공지가 내려왔다고 했다.

피해도 잇따랐다. 서울 관악구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는 지난 8일 오후 9시7분께 “침수로 3명이 갇혔다”는 신고가 들어왔지만 이들은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는 2명이 46세, 1명은 13세였다.

역시 지난 8일 오후 6시50분께 서울 동작구에서는 쏟아진 비로 쓰러진 가로수 정리 작업을 하던 60대 구청 직원이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감전으로 추정된다. 동작구에서는 같은 날 오후 5시 40분에는 주택 침수로 1명이 숨지기도 했다.

경기 광주시에서는 버스 정류장 붕괴 잔여물 밑에서 1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도로 사면 토사 매몰로 다른 1명이 사망했다. 같은 날 실종자는 서초구 지하상가 통로 등 서울에서 4명이 나왔고, 경기 광주에서는 하천 범람으로 2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김영철 기자


yckim6452@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