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혁, 팬데믹으로 ‘쇼팽 발라드’ 지각 발매
오랜만에 본 친구같이 낯설고도 익숙한 음반
커리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할 뿐
“음반을 남기는 것은 제 음악세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해요.”
50대에 접어든 피아니스트는 지난 10년 사이 무려 5개의 음반을 냈다. 2019년엔 독일 하노버 라이프니츠 홀에서 ‘쇼팽 발라드’를 녹음했다. 팬데믹으로 늦어졌던 앨범이 뒤늦게 세상에 나왔다. 3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서다. 피아니스트 조재혁(52·사진)은 “오랜만에 본 친구 같은,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녹음 음반”이라고 했다.
지난 18일 발매한 조재혁의 두 번째 피아노 앨범엔 쇼팽의 네 개의 발라드와 피아노 소나타 3번이 담겼다. 그에게 쇼팽은 이번이 첫 앨범이다.
“피아니스트로서 쇼팽은 꼭 공부해야 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그의 음악 세계는 너무 깊고 좋아서, 녹음을 하게 되면 연습과 해석이 다른 레벨로 들어가게 되죠. 끝까지 고민을 하게 되는 작업을 거치며 제 자신이 성장하게 돼요.”
일반적으로 쇼팽의 피아노곡은 프렐류드나 스케르초로 녹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조재혁은 “보통 발라드 4곡을 한 앨범에 담지 않는 것은 곡의 색이 너무 진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발라드 2번은 어렸을 때부터 쳤고, 3번은 대학교 실기시험 때 연주해 함께한 세월이 오래됐다. 또 소나타 3번은 평생의 과업과도 같은 작품이다. 아무래도 애착이 가는 곡을 음반 컬렉션에 넣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녹음 작업에는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프로듀서상 수상자인 마이클 파인과 세계적인 톤마이스터(녹음 엔지니어) 최진이 참여했다.
조재혁은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콩쿠르 1위, 모나코 몬테카를로 피아노 마스터스 국제콩쿠르 입상하며 국내외에서 이름을 알렸다. 20대의 피아니스트도 아닌데, 지금의 그는 커리어 패스를 역행하며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활동을 한다. 여섯 개의 음반 중 5개가 10년 이내에 나왔고, 주요 오케스트라의 협연 요청이 꾸준히 들어온다.
그는 “인생에 정주행이 있다면 역주행도 있을 것”이라며 “연주자의 커리어는 계획에 따라 풀리지도 않고 인생의 비슷한 시기에 주어지지도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쉽지 않은 시기는 있었다. 20대엔 콩쿠르마다 쓴맛을 봤다. “국제 콩쿠르 본선에 가는 것도 기적적인 일이지만, 무수히 떨어진 콩쿠르의 기억, 그것이 어느 순간 회의감으로 온 적이 있어요. 그 때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어요. 꽤 재미있게 공부를 하면서도 음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는 “그 때가 기장 힘든 순간이었다”며 “가난해도 좋으니 해보고 싶은 거 하자는 생각으로 다시 음악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 때부터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음악을 하게 됐다. 그는 “그러자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내 음악에 귀를 기울여줬고, 몬테카를로 콩쿠르에서 입상도 하게 됐다”고 떠올렸다.
“어떤 연주자는 신동으로 등장해 쌓아가거나 사라지기도 하고, 20~21세기 등용문 콩쿠르에서 입상해 커리어를 끌고나가기도 해요. 그것이 일반적인 수순처럼 보이지만 제 경우는 일찍 유학을 가서 좋은 학교에 가는게 어려운 지도 모른 채 공부했어요.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씩 묵묵히 했던 거죠. 지금의 이 흐름이 감사해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조재혁은 이번 음반 발매를 기념해 지난달 29일부터 최근까지 독일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에서 투어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선 오는 29일 서귀포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천안, 진주, 여수, 서울, 울산, 전주, 강릉 전국 8개 도시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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