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김지헌·주소현 기자]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쟤계가 안전 관리 전문가 선임을 고심하고 있다.
재계가 제도 허점을 우려하며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C레벨’ 책임자가 아닌 곳도 상당수고 아직 선임하지 못한 곳도 있다. 일부 기업들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안전관리까지 맡고 있어 전문성 확보가 관건이 되고 있다.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인력난에 재무적 여력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헤럴드경제가 26일 국내 주요 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안전관리 전문가(임원 이상) 선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최고안전책임자(CSO), 최고리스크담당책임자(CRO),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 등 ‘C레벨’ 안전 담당 경영진은 12명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이들 중 일부는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안전 담당을 겸직하고 있어 안전사고에 대한 전문성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공식 직책은 없으나 CFO(경영지원실장)가 CRO의 역할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외 글로벌 EHS센터 부사장과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부사장이 안전담당 실무를 맡고 있다. LG전자도 배두용 부사장이 CFO와 CRO를 겸직하고 LG이노텍도 김창태 전무가 CFO와 CRO를 겸직한다.
CFO가 겸직하는 것은 리스크의 범위를 단순 사고뿐 아니라 법적, 재무적 리스크까지 확대했기 때문이다. 매번 안전사고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사고의 발생 확률과 인력, 비용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많은 기업들의 경우 현장 관리자를 역임한 이들이 안전 담당 경영진으로 선임되고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제조기술담당에서 안전개발제조총괄로 업무 범위를 확대했다. 이동석 현대차 부사장도 생산지원담당에서 CSO를 맡았다. CSO로 내정된 윤종현 삼성중공업 부사장은 조선소장으로 현장 관리자다. 이두희 GS칼텍스 사장도 생산본부장에서 CSO를 맡게 됐다. 현장 전문성을 중시한 경우다.
기존 안전 관련 업무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김성희 LG디스플레이 전무는 글로벌 안전환경센터장에서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로, 김영환 LG화학 전무도 환경안전 조직인 매그놀리아 프로젝트장에서 CSEO로 선임된 사례다. 고영규 현대오일뱅크 부사장은 안전생산본부장을 맡으며 CSO 역할을 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기업들의 연이은 CSO 임명이 최고경영자(CEO)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중처법을 피하는 방법은 CSO를 각자대표로 임명해 안전책임을 부과하고 방어 차원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것 뿐”이라며 “이렇게 해야 다른 대표이사가 경영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허구적이고 왜곡된 지배구조를 강요하니 기업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며 “면책규정도 없고 사고가 나면 무조건 처벌을 받아야 해 기업들의 이같은 회피를 탓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법의 허점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업계는 고의·중과실에 대한 면책규정, 경영자 책임 및 원청책임 구체화 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문인력 모시기도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인건비 지원과 형사처벌 수위 완화까지 건의하고 있다.
일부 현장에서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아예 휴무에 들어가 안전교육을 시키는가 하면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문서화가 급격히 늘어나는 불필요한 행정소요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